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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티태스킹
    What am I doing? 2021. 10. 7. 12:48

    지금껏 아니 거의 최근까지도 스스로를 멀티태스커라고 생각했다.

    한꺼번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편이고, 주변인들도 일 처리가 빠른 내게 어떻게 그렇게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냐고 물을 정도였다. 평소 시간이 부족하고,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내게 멀티태스킹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심지어 초등학생 시절에도 문제집을 풀 때면 1번 문제의 보기를 읽고 정답을 체크하면서 다음 문제를 읽었다. 남들 눈에는 연속적으로 답을 마킹하고 내 모습이 답을 찍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그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서인지 이후에도 문제 푸는 속도가 빨랐다. 수능 언어능력 같은 경우도 다 풀고 나면 시간이 반 정도 남을 정도였다. 고2 때 첫 모의고사도 그렇게 풀고 시험 시간 내내 엎어져 자는 모습을 보고 뒷자리 친구는 내가 공부를 포기한 아이라고 생각했단다. 물론 이후에는 두뇌가 과도하게 과열되어서 얼굴이 벌게지고 시간 내에 푼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시험도 몇 번 봤지만 말이다.

    뭐든 한 번에 두 세 가지를 다 같이 하려는 습관은 여전하다. 멀티태스킹이 두뇌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완전한 멀티태스킹이라는 개념은 없으며, 주의 집중의 대상이 빠른 속도로 스위치(Task-Switching)되는 것임을 알고 있는데도 멀티태스킹 습관을 버리기가 참 힘들다. 시간을 낭비하는 듯한 느낌이 너무 강하다. 멀티태스킹이 치매 위험이 높다는 얘기를 최근에 듣고 좀 제어하려고 노력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는 가능하면 예능 방송 보면서 피아노 치는 습관은 버리려고 한다(그래서 피아노를 안 친다. 두둥!) 

    그런데 이렇게 순간적으로 작은 과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멀티태스킹은 남들보다 잘 하지만, 좀 더 큰 의미의 멀티태스킹에는 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업을 처리하면서 이 과업과 연관된 창의적이고 조직적인 행위는 녹록지 않다. 그 역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가 말하던가, 역사를 연구하면서 역사철학은 할 수 없다고. 역사철학 하는 사람은 역사 연구를 할 수 없고. 저차원 단계의 지식 측면에서 말하자면 인풋과 아웃풋이 동기간에 진행되지 않는다. 독서할 때에는 관련 글을 쓰지 못하고, 소회를 글로 정리하는 것조차 어렵다.

    역사상 엄청난 인물은 참 많지만, 전자를 발견한 톰슨이라는 물리학자를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연구소를 관리하는 연구소장이 자기 연구도 진행하여 음극선에서 전자를 발견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연구소를 놀랍도록 탁월하게 운영하는 관리자가 직접 연구하다니. 게다가 세상 뛰어난 스승이기도 하여 굉장히 인터랙티브한 강의도 지속했다. 제자 중 7명이나 노벨상을 탔으니 말이다. 철학자가 철학을 잘하면서 강연까지 잘 해내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런 게 진정한 멀티태스킹이라고 생각한다. 동기간에 아예 다른 분야로 뇌가 전환되면서 과업을 만들어내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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