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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이동산
    What am I doing? 2021. 10. 12. 15:21

    연휴 첫날 조카와 동생과 함께 서울랜드로 향하였다. 

    놀이동산을 좋아하는 조카 덕에 올해 벌써 두 번이나 서울랜드에 가게 되었다. 추석 연휴 때에도 한 번 갔었는데 이번에는 날이 더 선선해져서인지 놀이동산은 인산인해이다. 개장 전인데 동문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목부터 막히기 시작한다.

    유나는 팔짝팔짝 뛰며 입장. 평소에는 집에서 나오는 것을 귀찮아하는 내향성 집순이인데 놀이동산의 바이브는 아이의 몸과 정신을 관통하나 보다. 서울랜드는 어린이를 타깃으로 하는 캐릭터와 테마가 주종을 이룬다. 그래서 그런지 연인이나 학생들보다는 가족 단위 방문자가 대부분이다. 맨 처음은 저번에도 그랬지만 슈퍼윙스로 시작. 오프닝을 개사해서 구조대장 유나! 멋쟁이 이모!라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출동을 외친다.

    동생은 뒤늦게 짐을 다 싸서 캐리어를 굴리며 들어온다. 원래도 짐이 많은 스타일인데, 아이를 데리고 다니려면 짐이 많은지 꼭 캐리어를 끌고 다닌다. 누가 보면 해외여행 가는 줄 알 듯. 동생이 합류하면서 내게 타고 싶은 거 다 타고 오라고 한다.

    엑스플라이어니 하는 것들은 아직 운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은하열차888로 갔다. 더블 루프를 뜻하는 88열차와 은하철도999를 묘하게 섞어 짝퉁 느낌 나게 작명한 이 은하열차888은 2연속 루프 코스터임에도 지루하다. 굉장히 밋밋한 느낌이라 허전해진 나는 바로 블랙홀2000을 타러 갔다. 기다리는데 뒤에 본인들을 X세대라고 지칭하는 여성 네, 다섯 명이 내 바로 뒤에서 떠든다. 아이들은 다른 곳에 보내 놓고 자기들끼리 이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온 것 같은데 다들 말씨가 걸쭉해서 듣기가 거북하다. 왜 귀는 이리도 무방비하게 뚫려있어서 다물어지지 않는 걸까. 게다가 내게 자꾸 육박해온다. 계속 내 백팩을 건드리는데 사양하고 싶은 접촉이다. (사회적) 거리를 두고 싶은데 말이다. 꽤 오래 기다린 후 블랙홀 2000에 탑승했다. 루프는 한 번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하강과 트위스트가 많아서 훨씬 다채롭고 재미있다. 너무 빨리 탄 기분. 두 배로 길었으면 좋겠다. 다음에 혹시 오게 되면 은하열차888은 건너뛰고 블랙홀2000 두 번 타야겠다. 

    여세를 몰아 킹바이킹도 기다렸다. 킹바이킹은 가운데 자리와 양끝 자리 중 각자 원하는 곳에 줄을 설 수 있다. 나는 스릴을 즐긴다. 양끝 자리쪽에서 기다리는데 그러지 말걸 그랬다. 웨이팅이 엄청나다. 나는 지금 혼자 타는데, 그냥 가운데 자리에 줄을 선 다음에 양끝 자리 중 하나라도 남아있으면 그냥 그곳에 탑승했으면 되는데 말이다. 아까는 X세대 여성들이었는데, 이번에는 내 뒤에 초등 2-3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 네 명이 줄을 섰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말투가 사람을 기함하게 한다. 말끝마다 욕이다. 마일드한 욕도 아니고 강한 욕. 마치 반항기 청소년의 말버릇 같다. 이들도 계속 육박해오면서 내 가방과 다리를 치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치야! 뭐 이런 지네 부모들에게서 들었을 듯한 말을 해서 참을 수 없어졌다. 이들의 보호자인 듯한 뒤의 어른을 째려봤는데, 살펴보니 이 사람 옆에는 딸 둘이 보인다. 애들끼리 보낸 모양이다. 괜한 사람을 노려봤다. 이 사람들은 아까 만난 X세대 어머니들의 자녀들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길모어 걸즈를 보면서 최대한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혼자 줄을 서 있을 때는 여러모로 힘들다. 

    킹바이킹 맨 마지막 자리를 사수했다. 킹바이킹은 실로 엄청나다. 안전바가 헐거운 기분이라 몸이 빠져나갈 듯하다. 재미있긴한데 죽음의 공포도 살짝 온다. 롯데월드 스페인 해적선이 더 커서 짜릿한데 킹바이킹은 생에 대한 겸허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다시 조카와 합류. 탑승을 기다리는 내내 먹방을 시전한 유나는 배도 고프지 않다고 한다. 착각의 집 앞 왜곡 거울 앞에서도 가장 신났다. 버스킹 공연도 좋아하고 댄스 공연도 잘 본다. 나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자리도 못 찾으면 유나는 일단 사람들 틈 사이에 가서 엉덩이부터 붙이고 앉는다. 그러면 앉은 사람들이 자리를 옆으로 옮겨준다. 유나는 빈 자리를 당연한 듯 차지한 후 내게도 앉으라며 계속 자리를 만들어줘서 내가 사양하게 만든다. 동생은 멀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딸이지만 부끄러웠다고 한다. 다행히 아기에게 관대한 주변 사람들 덕분에 공연은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즐길 것을 다 즐긴 후 6시가 되어 집에 가자고 하니 유나는 나와 동생을 번갈아 잡아끌며 눈물바다이다. 입구에 있는 비행선 한번 더 타겠다는 것이다. 연간권이 있으니 다음에 와도 된다고 달래도 마이동풍이다. 그리하여 동생은 이틀 후 연휴 마지막 날 또다시 유나와 단 둘이 서울랜드에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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