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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새 하늘도 쳐다보기 힘든 눈이 되었다
    What am I doing? 2021. 9. 17. 12:07

    요즘 하늘이 정말 공활하여 높고 구름 없다. 하늘색이 너무 예뻐서 좀 볼라치면 눈이 욱신거려서 바라보기가 힘들다. 매일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가까운 것만 응시하여 수정체가 두꺼워지다 보니 이를 풀려고하면 근육통이 격하게 찾아온다. 오늘도 하늘 좀 보고 싶은데 격통으로 자꾸 외면하게 되는 상황이 서글프다. 그 와중에 백혈구가 눈앞에 어른거리기까지 한다.

    얼마 전에는 속리산 휴양림 체험 마을에 지인들과 다녀왔다. 오랜만에 자연을 만끽하며 평상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는데 비문증 때문에 눈앞은 시끌벅적하다. 단조로운 하늘색을 바탕으로 하니 시야에 티끌처럼 떠다니는 부유물이 보이는데 이것이 시선을 옮길 때마다 대형을 변화시킨다. 어느새 하늘을 보지 않고 비문, 즉 날아다니는 모기들에 정신이 팔리게 된다. 이는 눈을 가득 채운 젤리 같은 유리체가 혼탁해져서 망막에서 움직이면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부유물이 더 많아진다고 하는데, 나는 어려서부터 한참을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하늘을 보다가 "비문증 때문에 정신이 산란하네"라고 얘기하니 같이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던 친구가 "너도 그러냐?" 묻는다.

    문득 <충사>라는 애니메이션 제2화 <눈꺼풀 속의 빛, 瞼の光>이라는 에피소드가 기억났다. 빛을 보면 고통을 느끼는 스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눈꺼풀을 감아도 빛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는다. 그때 눈 안의 두 번째 눈꺼풀을 감으면 완벽한 어둠이 찾아오고 빛의 강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어둠을 통해 번식하는 무시(벌레)가 생긴다. 이 무시(벌레)에 기생 당하면 약간의 빛으로도 격통을 느끼게 되고, 종극에는 눈을 잃게 된다는 내용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비문증이나 눈 안의 백혈구를 보는 증세를 무시와 연결해 철학을 담은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어쩌면 백혈구니, 유리체 혼탁이니, 모양체 근육 수축이니하는 것들은 다 차치하고라도, 칠흑 같은 어둠으로 키운 내 눈 속 무시 때문에 나는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충사 말고 과학 이야기가 궁금하면 아래.

    https://youtu.be/Y6e_m9iq-4Q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