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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드] <산하령(山河令), 2021> 잡설 총평
    오덕기(五德記)/中 2021. 11. 22. 13:44

    <금의지하(锦衣之下)>를 다 보고 다시 <산하령>으로 돌아와 복습 중. 

    잡설을 무려 세 편으로 나눠 쓰는 열정. 사실상 총평이지만 잡설에 가까운 포스팅.

    <산하령>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서사가 약해서 배우들(특히 고숭, 용작, 안길사현) 연기력을 갈아 넣어서 내용의 유장함을 지키려고 한 부분도 보인다. 드라마의 주요 테마가 계속 변경되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온객행과 주자서가 꽁냥꽁냥 잘 사느냐가 이 드라마의 핵심 주제라는 것은 나도 안다. 암요 알다마다요.

    전체 서사를 관통하는 가장 큰 테마는 온객행의 복수, 더 나아가 강호 전체에 대한 원한이다. 그러나 여러 인연을 만나며 조경에 대한 복수와 오호맹에 대한 폭로 정도로 마무리 짓고는 더이상의 복수는 없음을 천명한다. 이렇게 온객행 자신이 목표를 포기한 후에도 <산하령>은 그가 애초에 뜻하던 바 무림 정파와 사파를 모두 지옥으로 보내버리겠다는 가장 큰 서사를 향해 나아간다. 이 서사의 끝에 감정선을 가장 지독하게 건드리는 사건이 바로 고상과 조위녕의 혼례의 비극과 청애산 전투이다. 정파와 사파의 행복한 만남을 예견하는 그 순간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은 경악스럽고 처절했다. 

     

    이 드라마의 장점은 일단 무협 장면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허공답보 수준의 경공이 아닌 경신술이나 보법은 드라마에서 표현하기 어려운데 <산하령>에서는 유운구궁보가 워낙 중요한 보법이라 여러 번 묘사되고, 이것이 꽤 볼만하다. 특히 한영에게 주자서의 정체가 들키는 유운구궁보는 굉장히 잘 묘사되었다고 생각한다(오토바이 지나가는 듯한 음향은 덤). 여러 겹의 옷자락을 표표히 날리는 결투 장면, 살짝 일본 느낌 나는 천창의 등장 장면들 모두 슬로우를 적절하게 걸면서 박력있고 우아하게 그려냈다. 다만 둘이 팔을 크로스 하는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오는데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상했다(왜 자꾸 저런 장면이 나오는 거야라고 생각했다는 뜻).

    그리고 이 드라마는 번역이 나름 열일 했다고 생각한다. 중문자막을 선호하지만 왓챠에서 한글자막판으로 보지 않았으면 누구 말마따나 온객행이 시를 읊을 때마다 두통이 생겼을 뻔했다. 대사에 전고나 시가 많은데 글자 수 제한에도 저 정도로 뜻을 풀어놨으면 꽤 용을 쓴 거다. 어쩔 수 없이 번역하지 않고 한자어를 그대로 쓴 것도 많은데(이를테면 소년의 용기인 기용(气勇)、혈용(血勇)、골용(骨勇)、신용(神勇) 같은 것) 이해가 간다. 다만 인물 묘사에 나오는 맹상군이니 조현덕이니 하는 말을 이해하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는 좀 궁금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대체 역어도 딱히 없다.

    물론 오역도 군데군데 눈에 띄긴 한다. 처음 주자서가 엽백의와 한 수 겨룬 후 정체를 묻는 주자서에게 엽백의가 "형태도 자취도 없다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사실 유운구궁보를 묘사한 거라 "형태도 자취도 없군"이라고 해야 맞다. 때로는 번역을 지나치게 점잖게해서(개뿔이란 단어는 그렇게 많이 썼으면서!) 캐릭터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할 부분도 있긴하다. 예를 들어 자신은 살인, 방화를 많이 한 악인이라는 주자서에게 온객행이 그러면 겁탈도 해봤냐고 물어서 주자서가 성질을 확 부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을 풍류도 즐겨봤냐고 번역했다. 나의 섭백의 할아버지를 엽백의라고 표기한 것은 참을 수 있다. 참고로 메이킹을 보다보면 유쿠의 영어자막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번역도 꽤 괜찮다. 다만 아상을 조위녕에게 맡길 때 반값에 넘긴다는 것을 50% 디스카운트 한다고 번역했던데 튜더 왕조 얘기 였어도 저렇게 썼을까 의심스럽다.  

    번역과는 상관 없지만, 입과 성우의 대사 싱크가 맞지 않는 부분이 꽤 보여서 괴이하게 생각했었다. 보면서 엇, 입 모양은 아름답다고 하는 것 같은데 대사는 바꿨네 역시 내 눈치가 좀 빠르지 하면서 중국 쪽 자료를 찾아보니 다들 이미 아는 거더라. 검열을 피해 그랬다는 것은 후에 알았다. 하긴 외국인인 내가 알아볼 정도면 본토인은 얼마나 잘 알아보겠는가. 그런데 후죠시의 뇌내망상 같은 독순술도 있어서 좀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다. 

    후죠시들이 독순술로 따낸 대사 변경의 예가 바로 위의 그림이다. 번역하기에도 부끄러운 대사가 많다. ㅋㅋㅋ 이 중 3번의 대사 같은 경우 "엄마 업어 주세요, 엄마 날개뼈가 제일 예뻐요" 라고 방송되었지만 원래는 "자서 업어줘, 자서의 날개뼈가 제일 예뻐"라고 하였다고 본토 후죠시님들께서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메이킹 필름을 보니 확실히 "엄마 업어주세요"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후에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의장에서 환각에 빠져 누군가의 이름을 계속 부르던데 무엇을 본 것이냐고 묻는데 실제로는 주자서 이름을 한번밖에 안 불렀다는 점은 여전히 의문스럽다.  

    아래는 "엄마 업어주세요"가 맞다는 증거. 이런 것에 진지하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당황스러웠 순간은 바로 총 36편인 이 작품의 마지막 편을 보면서였다. 가뜩이나 회상만 하는 설명조로 대충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와중에 뭐? 지금 마지막 편 보는데 이제와서 무고에 간다고? 끝을 도대체 어떻게 맺으려는 거야 하면서 경악하였다. 비록 그 당당한 천창과 독갈을 모두 눈사람 만들어 버리긴 했지만 원만하게 마무리는 했다고 생각한다. 둘이 행복하면 된 것이다(나는 관대하다). 그 와중에 염상이라는 이름 보고 또 눈물짓고. 흑흑. 공준 백발 잘 어울립니다. 

    중반 이후로 삽입되는 OST는 너무 튀고 구려서 드라마와 따로 논다고 생각했는데, 복습을 너무 많이 하니 귀에 익어서 이제는 찰떡으로 들린다(세뇌 당함). 그리고 세트장을 너무 한 군데에서 우려 먹어서 진주, 호주, 월주, 곤주, 촉에 왔다 갔다 한다는데 주변 지형이나 건물은 다 눈에 익는다. 이것을 CG로라도 덮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비슷한 풍광으로 만들어내서 아쉬웠다. 견과류 PPL은 오그라들었지만 중요한 돈줄이라면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옥륭 견과보다 주자서가 남들이 대화를 하든 말든 폭풍 흡입하는 해바라기씨가 더 먹고 싶었다. 11번가에서 해바라기씨 검색해 본 1인.

    이 드라마를 보면서 몇몇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온객행과 주자서는 처음 안길사현 때문에 사이가 벌어지고 죽상을 하며 실연의 고통을 겪는다. 그렇지만 독갈에 납치당한 성령을 구하고 갈왕과 만나서 아가리 파이팅도 한 후에, 다정히 둘이 앉아 성령한테 이야기 다 듣고 나서 갑자기 둘이 따로 앉아 싸운 코스프레를 한다. 여기 나만 우스웠나. 그건 그렇다 치고 성령은 왜 당연지사 온객행이 잘못해서 싸운 것이라 생각하고 대신 사과를 하는 것일까.

    또한 일종의 오류라고 한다면 엽백의와 관련된 부분이 이상한 게 많다. 엽백의는 처음 등장 장면에서 산하령을 들고 본인의 이름까지 친절하게 밝히는데 오호맹의 맹주인 고숭이 이름을 모른다. 젊은 시절 같이 놀았던 용현의 사부이고 역시 함께 놀았던 사계산장 진회장에게 백의검도 준 사람인데 말이다. 그들과 한 무리였던 용작은 엽백의를 알아보고, 장성령의 아비인 장옥삼도 장명산 검선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할 정도인데 말이다. 무림내부는 사돈에 팔촌까지 이름을 잘 알고, 엽백의와 커플 친구인 마장 용장청(용현 아빠) 이름도 알면서 엽백의 이름만 모른다고? 

    엽백의의 나이도 좀 이상하다. 세대로만 치면 주자서의 태사부급이니 많아야 70대 정도여야 한다. 그런데 100년 전 용장청이 만든 검이 그의 이름을 딴 백의검이라면 나이가 적어도 120살은 먹어야 한다. 허나 마장 용장청의 아들이 용현이고 역시 그가 생명을 희생해서 육합 뭐시깽이를 해서 엽백의가 장생불로하는 것으로 나온다. 용현은 살아있었다면 나이가 많아봤자 50정도 되었어야 하는데 아비인 용장청이 70세에 후사를 봤다는 것인지, 아비 세대와 아들 세대가 약 두어 세대 건너뛴다.

    나이는 그렇다치고, 분명 엽백의 앞에서 주자서가 천창 이야기를 하고 엽백의가 우두머리가 아둔하면 부하는 더 아둔하다고 운운하는데 왜 또 온객행의 신분을 주자서 앞에서 폭로할 때에는 천창 수령인 것을 몰랐던 것처럼 나오는지 모르겠다. 또한, 1차 영웅대회가 끝난 후 자기가 짠대로 판이 안 돌아가서 온객행이 동굴에서 낙담해 있는데, 갑자기 용효를 들고 쳐들어 온 엽백의가 온객행과 티격태격한다. 그런데 마치 온객행이 판 짠 것도 다 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어떻게 제 3자가 온객행이 판 짠 것을 알 수 있단 말인가. 둘의 티키타카는 재밌지만 엽백의의 비상한 상황 이해 능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유명한 니부페이 장면에서도 온객행이 엽백의한테 등짝 스매싱당하고 몸통만 우당탕 공격당했는데 얼굴에 멍들어있는 것도 웃겼고, 쓰러질 때 분명 외투를 입고 쓰려졌는데 어느새 외투를 땅에 깔고 누워있는 것도 웃겼다. 니부페이 장면은 온객행의 정체가 표면상으로 드러나고 그럼에도 둘이 서로를 구하는 아주 중요하고 멋있는 장면인데 공준이 너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고, 둘이 일어나지 못하고 같이 뒤로 벌러덩 넘어지는 부분은 볼 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이 멋진 장면을 조금만 더 신경 써서 만들어주지 아쉽다. .  

    틈틈이 인터뷰도 찾아봤는데, 둘이 한 살 차이인데 공준이 장철한을 라오깐부라 부르면서 엄청 아재 취급한다. 장철한 성향이 좀 옛날 사람 같기는 하다. <진정령>의 초전(샤오잔)과 동갑이던가 하던데 샤오잔은 (많이 양보해서) 소년감을 가지고 있다면 장철한은 조금 더 성숙한 느낌이 있다. 물론 공준은 말도 못 하게 해맑지만...... <산하령>의 인터뷰는 <진정령> 배우들만큼 케미가 좋지는 않다. 손희륜도 둘 사이에 있으면 만날 무슨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고, 주야도 꽤 점잖다. 이들 인터뷰에 황유명을 끼워놓았어야 한다. 으흐흐.

    며칠 전 <산하령> 콘서트 클립을 보았다. 전편은 너무 길어서 아직 볼 엄두가 안 날 뿐이고. 아상과 조위녕이 혼례복을 입고 <연멸> 같이 부르는데 아상이 우느라 노래를 잘 못 부르는 것을 보면서 나도 오열하고 있는데 친구가 기습 사진을 보내서 빵 터졌다. 내가 평소 대두 효과 짤이라 부르던 것이다. 엄청 감동적인 장면인데 각도가 이상해서... 흑흑흐흐흑흑흐흐흐흐흐흐흑

     

    어찌되었건 <산하령> 사랑한다. 복습을 해도해도 또 하고 싶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