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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 음모론 놀이
    오덕기(五德記)/日 2022. 4. 25. 14:56

    주변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꽤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무슨 책 읽냐는 질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을 읽는다는 사람들을 보고, 잠시 작품 목록을 찾아보고 기함했다. 어떻게 작품이 매달 출간될 수 있냐는 말이다. 나는 바로 음모론을 들이댔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매달 작품을 낼 수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 사람이 아닐 거다. 작가집단일 것이다. 상대는 쉽게 휘어넘어가지 않지만 어쨌든 단서는 흘린다. 그러고 보니 작품 수준이 들쑥날쑥하다고. 곧 미끼를 물듯하다. 그가 쓰는 작품은 주로 추리소설인가? 상대는 순순히 대답하기를 보통 그렇지만 다른 장르도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나는 무릎을 치며 말한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일단은 추리작품을 쓰겠다고 모인 작가 집단인데 가끔 그 안에서 로맨스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그 이름으로 출판한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당시부터도 워낙 그가 다작을 한 작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슷한 의문을 가졌다고 하지 않는가. 혹시 모를 일이다. 셰익스피어가 그의 이름을 빌려 쓴 여러 사람일 수도 있고,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도 이 이름 아래 뭉친 여러 단체일 수 있다고. 책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얼굴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역시! 나의 과장된 반응에 상대는 나의 꾐에 넘어간 것 같기도 하다. 그럴 수 있겠다고 대답하는 것을 보니. 아니면 질려서 그냥 너는 그렇게 생각하라고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고.

    친구가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읽어보라며 권한다. 최근에 다시 읽는데 밤잠을 아껴가며 읽는다고 한다. 보통 소설은 안 읽는 나지만 친구가 워낙 강추하니 검색. 그런데 작품이 엄청 많다. 다작도 이런 다작이 없다. 나는 또다시 음모론을 들이댔다. 너는 미야베 미유키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히가시노 게이고와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했고, 여기에 클램프를 더하였다. 그러나 미야베를 좋아하는 친구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나는 계속해서 얘기했다. 스토리라인과 캐릭터 짜는 사람, 자료 모으는 사람, 내러티브 쓰는 사람, 대사 쓰는 사람 등. 네 명이 한 팀일 거라고. 작가들은 소설 쓰다 보면 워낙 할 말이 많아서 필연적으로 수필을 쓰게 된다고. 미야베가 수필이 없으면 역시 작가 집단이라고. 그런데 에도 산책이니 하는 수필이 있다고 한다. 아 자료 모으는 사람이 에도 자료 모으다 생긴 일 썼나 보다. 진지한 친구는 그러면 도덕성에 어긋난다고 한다. 수상하면서 특정된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래? 그러면 미야베 미유키는 한 사람 인정. 나도 나름 수긍이 빠르다.

    이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히가시노 게이고도 수필이 있더라. 책이 매달 출간되는 것은 꽤 오랜 기간 누적된 책들이 한국의 최근 인기에 힘입어 열심히 번역되는 거고. 클램프는 작가집단인 것만 알고 있었는데, 방금 찾아보니 네 사람의 얼굴이 다 공개가 되었더라. 나는 그저 비밀집단이라고 생각. 

    어쩌면 내가 이런 식으로 음모론을 만들어낸 것은 다작하는 가운데 좋은 작품을 쓰는 창작자들에 대한 또 다른 경외심의 표현일 것이다. 한 사람이 소설가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귀찮아하지도 않고 열심히 좋은 작품을 써내려가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인가 하면서 말이다.

    하여 친구의 권유대로 미야베 미유키의 책 <흑백> 을 읽기 시작했다. 책이 너무 좋아서 추천해준 친구에게 엄청난 감사인사를 했다는 후일담은 또한 별개의 것이고.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