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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드] <차시천하(且试天下, Who rules the world)> 잡설
    오덕기(五德記)/中 2022. 6. 3. 14:38

    보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조로사가 나온다고 했고, 마침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으로 wetv를 구독하게 되었는데, 볼 게 별로 없었다. 

    초반부터 전개가 휘몰아 쳐서 그냥 멍 때리고 보았다. 중드가 보통 초반에 캐릭터니 상황 설명한다고 느릿느릿 진행하는 구간이 있는데 그런 거 없다. 바로 주인공 남녀가 팡팡 등장한다. 이미 둘은 아는 사이라 서로 탐색하느라 시간 낭비하는 것도 없고, 바로 얽혀 들어간다. 바둑돌도 아니고, 남주는 흑풍식, 여자는 백풍석이고 각각 검은 옷과 흰 옷을 입고 등장한다. 흑풍식(黑丰息)과 백풍석(白风夕)은 이름의 한자가 다르긴 하지만, 중국어 발음과 성조는 모두 같다. 둘 다 [fēng xī]. 쉽게 말하면 강호 상에서 그들은 동명이인이다.

    세계관은 대동의 황제가 현극령이라는 일종의 절대 반지를 가지고 여섯 개의 제후국을 다스린다. 약간 주나라와 전국시대 칠웅의 느낌이랄까. 그러다가 황제가 현극령을 잃어버리게 되고, 이것을 찾으라고 제후국에 명령하면서 이에 얽힌 음모가 시작되며, 정의로운 여대협인 백풍석이 연루되고 그녀에게 흑심을 품은 흑풍식도 함께 끌려온다.

    흑풍석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놀랍게도 나는 머리 스타일 좀 바꿨다고 계속 못 알아봤다. 나중에 대화와 회상 장면을 본 후에야 정체를 파악했다(오늘도 열일하는 안면인식장애). 그에 비해, 백풍석의 정체는 그냥 얘기를 꺼내자마자 눈치를 바로 깠다. 못 알아들을 수가 없는 상태라고 해야 하나.

    흑풍석의 주요 무기는 철선인데, 백풍석의 주요 무기는 피백(披帛, 혹은 영건領巾)이라고 부르는 물체이다. 즉, 선녀가 두르고 다니는 길쭉한 천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걸로 사람을 후드려 패는데 나같이 검에 환장하는 사람은 이 둘의 무기가 여간 마뜩지 않았다. 다행히 후반에서는 검을 들고 잘도 싸워준다. 그런데 무술 장면은 초반이 더 좋았고, 막판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무술의 질과 카메라 워크와 CG 수준이 모두 확 떨어진다.

    보다 보면 기시감이 엄청나게 든다. 정치 암투를 다루는 방식이 과거시험과 군마 밀매, 빨리 떠난 모후에 대한 그리움과 계후의 패악, 왕자에게 마음을 품은 궁녀 환냥, 그리고 의심 많은 뿌왕(황썅은 아니지만)에게 고통당하는 왕자까지 <학려화정>을 떠오르게 한다(<랑야방>도 떠오르고). 다만 놀랐던 것은 풍석란이 기꺼이 받아들이는 처벌이었는데, <산하령>의 주자서가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이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의 정체성과도 같은 것인지라 약간 놀라웠다. 

    이야기 자체는 로맨스보다는(둘 사이가 너무나도 굳건하다), 둘이 어떻게 천하를 아우르는지에 귀결된다. 로맨스가 너무나도 굳건하다보니 중드 특유의 대화를 안 해서 오해가 쌓이는 고구마 구간은 남녀 주인공이 아니라 형제간에 생긴다. 이렇게 남녀가 오해나 잠시 간의 이별 없이 잘 풀리는 경우가 있나 싶다. 

    <차시천하>는 흑풍식 위주의 서사가 진행될 때는 엄청 재밌는데, 백풍석 위주의 스토리가 진행되는 후반부에서는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다. 가장 큰 문제는 제목이 결말을 스포 한다는 점이다. <차시천하(且试天下)>는 잠시 천하를 도모하다? 정도의 뜻인데 결국 FIRE족을 예상할 수 있는 제목 아닌가.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미술에서 고급진 냄새가 난다. 옷도 열심히 갈아입어 주고. 게다가 어디에서 저렇게 닮은 아역/젊은 역을 구했는지 싱크로율이 대단하다. 유전자 캐스팅 수준이다. 전반적으로 중견 배우 중에서 얼굴에 눈에 익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고 다들 연기를 잘한다. 주연 배우도 연기를 잘하고, 전반적으로 연기력이 훌륭한데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연기자는 풍장 역을 맡은 장천양이다. 풍장은 맘고생 몸고생 제일 많이 하는 역할인데, 이를 기가 막히게 소화했다. 게다가 본인 목소리인 듯싶다. 보면서 풍장풍장 울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는 봉서오 역을 맡은 선로인데, <진정령>에서도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강단 있는 여성 종주 역할인데 너무나도 멋있었다.

    주연 배우를 제외한 젊은 남성 배우의 얼굴이 대부분 엘프계(마상) 아니면 네모계(빈상)이다. 남주인 양양은 이름만 들어보고, 장철한과 같이 농구하던 친구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이번 드라마에서 처음 봤다. 조승우와 비를 섞어놓은 듯한 이미지인데 너무나도 반듯하게 잘생겨서 드라마의 진입장벽을 지하 수준으로 낮췄다. 다만 양양은 문건을 볼 때 매번 노안인 것처럼 멀리 두고 보는 버릇이 있는 듯. 

    드라마에서 아쉬웠던 점은 뒤로 갈수록 힘이 빠졌다는 점과 백리씨인 이약동이 대사를 칠 때 후궁을 목소리로만 처리했다는 점이다. 이게 너무 티가 나서 라디오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편집점도 이상하게 잡을 때가 많아서 두 배우가 번갈아 가며 나와야 할 편집인데, 한 사람 얼굴이 계속 나오고 그러면서도 화면 각도가 미세하게 변해서 끊고 찍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7화 3분 흑풍석의 대화 장면.

    그리고 백리씨는 16세부터 왕의 옆에 있었고 20년 동안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했는데 그럼 36세이어야 한다. 누가 백리씨를 36세로 보겠는가(중간에 5년 동안 못 본 시간을 빼더라도 41세이다.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또한 두 주연 성우가 둘다 노호를 지르는 데에 부족함이 많다. 뒤로 갈수록 소리치는 장면이 많은데 그때마다 목소리 뒤집히고, 성량은 작고,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낸다. 지르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일본 성우만 보다가 이토록 목소리에 힘이 없는 성우는 오랜만인지라 뜨악했다. 

    그놈의 백성과 천하 걱정은 정말 도가 지나치게 해서 약간 듣기 거북할 정도였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정부기관 눈치도 봐야하고 신경 쓸 일도 많으니 그렇겠지만 공자왈맹자왈도 한 두번이지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내가 시청할 당시 총 40부작 중 wetv에 34편까지 올라와서 35편부터는 duboku에서 중국어로 봤는데, 35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해서 내 중국어가 많이 늘었나 보다 생각했다. <산하령>을 여러 번(아주 많이 봄) 본 게 역시 도움이 되나 보다며 아주 뿌듯해하였는데, 역시 착각이었고 36편부터 다시 못 알아먹는 구간 속출. 캬캬캬.

    <장안12시진>을 멈추고 달릴 정도로 재밌게 본 드라마.

    막판에 집중력 흐트러진 것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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