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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드] <일촌상사 少年游之一寸相思> 잡담
    오덕기(五德記)/中 2022. 10. 31. 15:28

     

    9월 12일에 보기 시작했는데 10월 26일에 시청 완료. 처음부터 꽤 재밌다고 생각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로 한가로이 드라마를 볼 정신조차 안 되어서 멈추었다가 여유를 찾은 후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가끔 OTT에서 추천이 되기는 했지만, '나의 소녀'로 시작하는 제목과 감성 터지는 포스터 때문에 제쳐두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웹서핑 중에 숨겨진 명작이라는 식의 강력 추천을 보고 속는 셈 치고 보자며 시작했다. 온 세상 무협은 한데 그러모은 듯한 클리셰 파티인데 그렇게 진부하지는 않다. 논리적으로 저게 말이 되냐, 저 상황에서 왜 저걸?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간혹(실은 왕왕) 있긴 하다. (목영은 왜 소선을 가지고 무림맹주가 될 수 있다는 거지? 자신을 겁탈하려 했던 가짜 목휴를 목련은 왜 못 알아보지? 등등) 그러나, 배우들이 그 안에서 진지하고, 그게 맞다고 하면 그냥 맞는 거다. 

    감...성



    초반 중요한 국가 안보(?) 정보를 담은 산하도를 찾기 위해 원정대가 꾸려지는데, 그 조합이 이상하다. 떠돌이 의사와 그의 제자, 무림 정파 제자 2명, 그리고 도둑이다. 산하도를 찾아오는 부분에서는 <사기> <맹상군열전>의 '계명구도' 고사가 떠올랐다. 맹상군이 도둑질이나 닭 흉내나 내는 변변치 않은 재주의 식객의 도움으로 여우털가죽옷을 애첩에게 바치고 무사히 위험에서 벗어난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중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그리고 한국에서도 알만한 사람은 아는 유명한 고사를 샘플링했는데 오히려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도 내가 봤던 모든 무협지와 드라마를 집대성한 듯한 소재와 플롯을 때려붓는데 꽤 잘 버무렸다. 무협의 삼대 요소라 할 수 있는 의, 협, 그리고 정을 소담스럽게 담고, 강호 은원, 무림 비급, 영약, 정파와 사파, 종교와 녹림, 그 안에 숨겨진 비밀, 그리고 정치적 암투와 무림과 조정의 결탁까지 잘도 치고 들어온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캐릭터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기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다 직진인데, 여자가 더 직진이다. 다만 그 진행 방향에 문제가 있을 때가 많아서 저도 모르게 답답함에 앓는 소리를 내게 된다. 

    일단 여자 주인공인 소운락(苏云落 또는 비구아)은 목표가 확실하다. 천하의 명약을 구해 중독된 자신의 사부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약을 찾아 10년을 떠돌면서 이를 위해선 뭐든 한다. 지나치게 직진이라 남주가 보내는 사랑도 쳐낼 정도이다. 그러다가 또 한 번 방향을 틀어서 직진하는데 이것도 고달프다. 여주는 장아흠(张雅钦)이 맡았는데, 초반에 역용을 했을 때 약간 박나래 느낌이었다(누가 기분 나빠할지는 모르겠다). 전반적으로 조미가 굉장히 많이 생각나는 외모였다.

    남자 주인공은 떠돌이 의사인 좌경사(左卿辞 혹은 엄식)이다. 드라마에서 그는 무섭게 여주를 향해 직진하고 너무 억지로 결혼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밖의 나머지는 모두 요동친다. 목표도, 신분도, 머리 색깔 변동도 거의 2019년에서 2022년까지의 주식 등락 수준이다(잠깐 울고). 그러다가 갑자기 애국애민애족 정신을 체현하는데, 여기에서 당황한 사람 나뿐일까. 중드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이긴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희생적으로 진충보국 정신이 뻐렁치는 주인공 캐릭터는 최근 무협에서 본 적이 없었다.

    주인공을 맡은 장요(张耀)는 약간 소년미도 있고 부정교합 느낌도 있다(연관성 없는 특징 두 가지를 나열해 봄). 외모가 눈부시게 훌륭하지는 않은데 드라마 여섯 편 중에 한 번 꼴로 엄청 고운 천하 절색의 선이 나올 때가 있다(총 43편이니 7번 정도라 하겠다). 무공도 하지 못하는 데다가 시종일관 골골거려서 우리 아버지가 이 캐릭터를 싫어합니다. 성우는 그 유명한 위초(魏超)를 썼다. 그의 연기를 좋아해 본 적이 없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의외로 괜찮았다.

    여기까지 보면 내가 이 드라마 주인공 커플을 크게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고 성급히 판단하기 쉬울 것이다. 제대로 봤다. 내가 좋아하는 커플은 드라마에서도 좋아하라고 입에다가 떠먹여 준, 매력 요소는 모두 몰빵한 바로 심만청과 문사연 커플이다.

    심만청(沈曼青)은 멸문 당한 문파 출신으로 지금은 정양궁의 수제자이자 홍일점 여제자이다. 강하고 고지식한 이 제자는 목부의 차기 장문과 혼약이 있지만 영 마뜩지 않아한다. 이후 제보다 열 살은 많은 산수도의 종주인 문사연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 혼약도 파기하고 고백한다. 그리고 겪는 우여곡절. 내가 스포를 잘못 밟아서 이 캐릭터가 죽을까 봐 이제나 저제나 걱정할 정도였다. 캐릭터 자체도 잘 빠졌지만, 이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등욱립(邓郁立)은 약간 심심하게 생기고(내가 좋아하는 외모라는 뜻), 굉장히 잘 빠진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배우이다. 그래서 초반에 남장을 하는 여자 주인공 역에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문사연(文思渊)은 사통팔달 정보에 밝은, 랑야방으로 치면 랑야각 느낌이 나는 산수도(山水渡)의 종주이다. 그런데 성격은 종을 잡을 수 없고, 상인 특유의 재리에 밝은 느낌을 강하게 줘서 신뢰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이 사람의 실제 신분도 보다보면 나타나는데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사람이 심만청의 사랑을 그득 받는 역할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같은 마음임에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심만청을 밀어내는데 둘 다 처연 열매를 잔뜩 먹는다. 배우는 추정위(邹廷威)로 꽤 유명하다는데 나는 초면이었다. 그러다가 바로 이어서 본 <월상중화>에서 이 사람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나와서 혹시나 했더니 이 사람이었다(배우 얼굴 알아보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어요. 오늘도 열일하는 나의 안면인식장애)

    그다음으로 마음에 든 애정라인은 바로 은장가(殷长歌)와 주염(朱厌)... 어익후, 아니 은장가와 사강아(谢姜儿, 허몽원(许梦圆) 분)이다. 은장가는 심만청과 같이 정양궁의 제자로 차기 장문이다. 그와 애끓는 우정을 나누고 의형제가 되는 주염은 혈익신교 교주 유천의 아들인데 어머니가 여러 이유로 주염을 아들로 인정하지 않아서 나름 세상을 구른다. 사강아는 녹림에 더 가까운 무이재 재주의 딸인데, 선천적으로 심질환을 앓고 있다. 우연히 무이재에 찾아온 좌경사와 소운락과 세상 구경을 하고, 그 안에서 은장가를 만나면서 사랑이 싹튼다. 심만청과 문사연이 처연처연 열매를 먹었다면, 이 둘은 귀염귀염 열매를 먹어서 나는 이 둘을 참 좋아했다. 물론 은장가와 주염이 대놓고 남남상열지사를 풍길 때가 있어서 우리 강아는 어떡하라고! 를 외치게 한 적도 여러 번이다. 초반에는 은장가를 맡은 정호(郑好)와 주염을 맡은 석운붕(石云鹏)의 얼굴 구분을 못해서 참으로 정호에게 미안한 짓을 했다. 이제사 돌아보매 헷갈리기 어려운 얼굴인데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전반적으로 남자 캐릭터는 너무나도 지고지순하고 여자캐릭터는 의기나 정신이 꽤 강하고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굵직굵직한 주연과 조연뿐만 아니라 영서(혹은 여기)라는 세작 캐릭터도 그렇다. 그래서 소운락의 스승인, 정양궁에서 파문된 소선도 드라마 특성상 여자일 거라고 추단 할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모든 주요 등장인물이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얘네가 주요 인물


    주연급(위에서 말한 7명의 캐릭터)의 인물이 전반적으로 평범한데 비해 중년 여자 배우는 화려하고 예쁘다. 그런데 배우 외모가 요즘 나오는 일반 중드보다는 포청천에 더 어울리는 비주얼이다. 특유의 그 느낌. 나만 아는 건지. 그리고 목영(우정출연이라고 하는데, 난 이 게 뭔지 잘 모른다). 결혼도 안 했는데 이렇게 늙어 보여도 되나요. 그 와중에 아역은 너무 유전자 캐스팅이라 놀랍다.

    이 드라마가 놀라운 점은 약간 포청천스러운 배우들을 가지고(일타쌍피로 까고 있는 건가), 확신의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퀄리티의 화면과 연출력을 뽐낸다는 것이다. 곳곳에 치밀하게 계산한 미쟝센과 카메라 워크, 그리고 빛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어우러져 꽤 아름다운 화면을 빚어낸다. 요즘 드라마에서는 촌스럽다며 멀리하는 옛 무협 특유의 아련한 감성까지 잘 표현해내곤 한다. 뿐만 아니라 감정선을 굉장히 섬세하게 잡는 편집도 잘하는데, 아들과 아버지가 처음 맞닥뜨렸을 때의 편집도 인상 깊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정안후의 사형장 장면이다. 그곳에서 그를 구하기 위한 정북군 장수의 움직임과 아들 엄식의 고뇌,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파악한 아버지의 결기를 숨 가쁘게 교차 편집하는데 이게 자칫하면 굉장히 유치해질 수 있는데, 너무나도 잘 뽑아내서 그만 여기에서 뿌앵 울어버렸다. 

    그렇다고 연출이 모두 마음에 쏙 든 것은 아니다. 가끔은 상황 묘사할 때 그쯤이면 충분한데 꼭 하나를 더 해서 과함이 지나치게 느껴질 때가 많다. 1절만 해도 충분한데 말이다. 예를 들면 망한 무엇인가가를 표현하기 위해 미장센과 몽타쥬 기법을 모두 사용해서 있는 힘껏 표현했는데, 그 위로 꼭 떨어지는 상징물을 더한다. 이를테면 옛날 <쥐라기 공원> 영화에서 배너 떨어지는 그 느낌. 절로 그..., 그만해를 외치게 된다.


    이것도 다 섬세하게 연출하다 보니 생기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섬세하다고 느낀 것이 바로 음향과 성우의 녹음이었다. 동시와 후시 녹음을 섞었고, 주인공 두 명과 단역 몇 명은 전문 성우가 녹음하고 나머지는 모두 자기 목소리인데, 음향도 굉장히 적절하고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조차 굉장히 잘 표현됐다. 보면서 최근에 본 중드(내가 중드에 대해 리뷰한 거의 모든 포스팅에서 음향 어쩔 거야 끄아악을 외치고 있는 데서도 볼 수 있겠지만) 중에서 음향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드라마였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 성우인 (왜 자꾸 남자 주인공으로 쓰이는지 모르겠는) 위초 목소리와 연기까지 좋게 들린 걸까.

    드라마의 단점을 얘기하자면 사골 물인 썩은 정파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쯤되면 한번 안 썩은 정파 얘기도 보고 싶다(비현실적인가). 그리고 조정 얘기, 정치적 암투가 약간 지루하다는 점일 것이다. 스토리 외적인 측면에서는 의상이 심하게 안 예쁘다는 단점이 있다. 날이 추워서 여러모로 감싸느라 그렇겠지만 그게 참 별로다. 심지어 예쁘다며 입힌 옷조차 별로이다. 그리고 남주가 매장소를 좋게 말해서 오마쥬, 신랄하게 말하면 복붙 했다. 소년장수였던 과거라거나, 현재는 무공을 전혀 하지 못하고 병약하지만 계략만은 천하제일이라는 설정 등이 그렇다. 그러다가 나중에 털옷을 입는데 엇 많이 본 옷이다. 그리고 비류와는 결이 다르지만 비스므레한 제자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그러하다.  


    왓챠와 티빙을 편한대로 돌려가면서 시청했는데, 그러다 보니 한글 자막에 전적으로 의지했다(캬캬캬). 다른 중드 리뷰에는 한글 자막으로 보다가 번역 이상하다고 불 뿜는 포스팅이 꽤 많은데, 이 드라마의 경우 번역이 절묘하게 잘 되었다고 느낀 적이 굉장히 많다. 다만 호칭의 변화에서 오는 맛을 못 살린 게 아쉬웠다. 이것은 일반적인 중드 번역의 특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없는 자나 호, 혹은 별칭, 그리고 호칭이 많아, 드라마를 대충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헷갈리기 일쑤라 자막에서는 통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문종주가 심만청하게 약간 거리를 두면서 말할 때는 꾸냥이라 그랬다가, 청혼할 때는 여협이라고 하더니, 심만청이 어리광을 부리니 놀리듯이 샤야토(약간 바보 같은 기지배라고 귀엽게 부르는?)라고도 한번 해준다. 영서가 문사연이 자신을 칭할 때는 계속 제자라고 하는데, 문사연은 그녀를 이름으로 거의 부르지 않고 꾸냥이라고 나름 높여준다. 그런데 이런 맛을 살리지 않았고 시종일관 하나의 이름으로 통일해서 부른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호칭만큼 두 사람의 관계 설정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게 또 있을까 싶다. <진정령>에서 위영, 위공자, 위무선이라고 부를 때의 온도 차이, <산하령>에서 온공자, 온객행, 온대선인, 온형, 온곡주, 사제, 노온이라고 부를 때의 관계성의 미묘한 변화에 열광하는 수많은 덕질러들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의 원제인 <소년유지일촌상사(少年游之一寸相思)>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소설의 원제는 <일촌상사>인데, 이는 만당 시기의 시인인 이상은(李商隱)의 여섯 수 짜리 애정시 <무제(無題)>의 두 번째 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원래 구절은 "일촌상사일촌회(一寸相思一寸灰)"로 굳이 번역하자면 '한 조각 그리워하는 마음마저 한 줌 재 되리니' 정도가 될 것이다. 소설 원작의 제목이자, 여자 주인공이 가진 단검의 이름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도 대사로 두 번 정도 나온 것 같은데, 이 드라마의 기조를 잘 드러낸다. 마지막 한 조각까지도 그리워하는 마음 가득하지만, 한 마디만큼의 거리에 서로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니 말이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지만 그 뜻을 저버릴 수 없어서 결국 놓아줘야 하는 그런 상황으로 가득하다. 

    드라마 제목으로 쓰인 <소년유(少年游)>는 별안간 송대에 유행했던 사패(詞牌)라는 곡조의 제목에서 온 것 같다. 사패가 뭔고하니 음률이 일단 있고, 엄격한 형식에 맞춰서 음표에 따라 가사를 끼워서 만들어 넣는 것이다. <소년유>라는 제목의 꽤 유명한 가사들이 많지만 내용은 다 제각각이라, 이 드라마에서는 젊은이들의 역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제목을 쓴 것이 아닐까 싶다(좀 뜬금없다).

    참고로 이렇게 스포를 많이 해놓고도 양심 없이 가장 큰 스포를 하자면, 이 작가는(드라마 각본가인지, 원작 작가인지) 결혼과 웬수를 진 것이 분명하다. '귀여운 공격성(cute aggression)'이라는 것이 있다. 뇌는 평정심을 좋아하는 기관인지라 인간이 과도하게 귀여움이나 즐거움 등의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정반대의 감정을 유도하려고 노력한다. "아이 귀여워서 와득와득 깨물어버리고 싶네" 같은 감정 말이다. 결혼이라는 가장 길하고 경사스러운 행사에 (얼마나 경사스러운지, 좋을 희喜를 쌍으로 쓰지 않는가)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함인지 비극을 있는 대로 변태스럽게 들이댄다. 혹시 작가에게 무슨 일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와 길다.

    됐고, 안 본 사람 보세요. 
    이상 다 끝내고 <산하월명>과 <월상중화>를 조금 보다가 <일촌상사>의 산하도, <산하월명>의 산하라는 말에 다시금 <산하령> 복습 시작한 1인이.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