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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의 <장소와 장소상실>(Place and Placelessness, 1976)學而時習之不亦悅乎/문사철 2024. 11. 13. 22:48
지리학자인 Edward Relph의 박사논문을 출판한 "장소와 장소상실"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측면으로서의 장소를 분석한다.
책 제목인 '장소'와 '장소상실'은 '장소와의 끊임없는 유대' vs '광범위한 획일화'를 뜻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장소(Place)"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애착과 소속감을 가지는 중요성을 지닌 특정 위치를 의미한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일 수도 있고, 신성한 공간인 종교건축일 수도 있고, 아지트일 수도 있다.
-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장소에 집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이다.
- 그러다보니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사는 실향민도 있고, 터전을 잃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며 싸우는 사람도 있다.
- 꼭 그런 거창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학교 다닐 때 책상 가운데에 선을 긋고 넘어오면 내 것을 주장해본 적이 있는지.
- 벽이나 책상에 자기가 덕질하던 무엇인가를 잔뜩 쓰며 꾸며 본 적이 있는지.
- 즉, 어떤 특정 위치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것과 소통하면 장소가 된다.
이와는 반대로, "장소상실(Placelessness)" 개념은 현대 사회에서 뚜렷하고 의미 있는 장소 감각이 결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라 할 수 있는 집조차 점차 투자 혹은 투기의 대상으로 변질되었는데, 이를 하이데거는 장소라는 부르지 않고, '살기 위한 기계'라고 명명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장소성의 상실이 인간에게 소외감, 단절감, 정체성 상실을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 비근한 예로 자본주의는 광범위한 획일화를 가져옴. 대도시의 모습은 사실 어디를 가든 대동소이하고, 해외여행을 가도 좋은 브랜드 호텔은 어느나라를 가나 비슷한 느낌이고, 스타벅스도 어디를 가도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장소적 특징이 아니라 자본주의 특징만 가지고 있다.
그래서 파워집순이인 나는 가끔 야구장, 공연장, 전시회에 가거나, 성당이나 절간에 들어가곤 한다. 이 장소는 획일화된 도시라는 구조 속에서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부여하면서 내가 장소와 의미있게 소통하게 만드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 시절 대학원 연구실을 보면 각기 자기 연구실에 응원하는 야구팀이나 응원하는 대선 후보 깃발 등을 붙여놓았다. 내 연구실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나는 이 공간에 유대감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고, 장소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내 연구실임에도 마치 도둑이 점유하듯 불안함을 느꼈다.
대학 때도 동아리를 보면 정체성이 강한 방은 바로 강한 개성이 드러난다. 바로 옆방만 해도 유리창에 잔뜩 적어놓은 글자가 스타트업 회사의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나는 그런 식의 내 공간에 대한 장소성을 부여하는 행위가 의미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50년 전 책이고 굉장히 피인용이 많이 된 책이라 새로움이 덜했고, 이분법적 시각에 대한 비판 받을 부분이 많았다. 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작가와 싸우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사람이 실제 장소에서 경험하고 형성하는 장소의 깊이와 복잡성에 대한 이해를 추구함으로써 인간이 왜 장소에 애착과 정체성을 부여하는지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장소가 가진 의미와 본질을 추적하게 한다.
이 책은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과 소통하는 공간이 있는지. 나를 나로 만들고, 나의 정체성을 반추하게 만드는 공간이 있는지, 혹은 많은지.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다. 인간답다는 말은 곧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장소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 Edward Relph반응형'學而時習之不亦悅乎 > 문사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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