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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최유준 <음악 문화와 감성 정치 - 근대의 음조와 그 타자>, 2011
    學而時習之不亦悅乎/문사철 2024. 11. 15. 17:01

    최유준의 <음악 문화와 감성 정치 - 근대의 음조와 그 타자> 라는 책은 음악 형식이나 작품만을 논하는 음악 분석을 비판하고 음악을 사회나 문화 그리고 정치적 의미로 분석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공하는 책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언어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월터 옹(Walter J. Ong)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제시한 구술성(orality)-문자성(literacy)-2차적 구술성(secondary orality)의 범주를 음악분석의 문화적 배경의 도구로 활용하여 음조의 다양성과 표준화 사이의 갈등이 근대의 문자성(literacy)와 밀접한 관련을 가졌다는 전제 하에 음악사의 큰 흐름을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최유준은 음악에서의 음조가 어떤 문화적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으로 책을 시작한다. 

    우리는 노래를 들으면 바로 이 노래는 슬퍼, 어두워, 혹은 밝아, 즐거워라는 감정을 느낀다. 나는 노래를 듣고 느끼는 슬픔과 기쁨의 정서가 꽤 보편적인 감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은 장조나 단조라는 곡의 음조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고 근대의 권력관계에 의해 편성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예전에 캄보디아의 종교음악을 들으며 슬픈 단조의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들에게는 이것이 기쁨을 연주하는 곡이라고 해서 서양 고전음악의 음조가 보편적인 감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기억이 난다. 어린 조카에게 장조의 음악을 들려줬는데, '이 노래는 무섭게 들려'라고 해서 '아니야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 거야'라고 정정해준 적이 있는데, 어쩌면 나도 모르게 서양 중심의 권력관계에 편입된 음조를 아직 속칭 보편성의 영향을 받지 않은 어린 친구에게 주입한 것은 아닌가 한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원래 서양의 화성이 다양했는데 이걸 이론적으로 하나로 통일하고 다른 음조는 모두 소음으로 배제시켜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큰 역할을 한 것이 기보법이다. 이 기보법 또한 권력적이고 중앙집권적이고 일원적인데, 이런 식으로 서양 음악은 조성에서 벗어나는 음은 모두 소음으로 규제해버리고 배제시켰다는 것이다. 

    우리가 문자를 기록하는 방식이나 표준어 체계의 정립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의 방언이 어조(語調), 즉 억양에 의해 규정되는데, 이 음조는 문화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표준어 음조에 의해 사투리 음조와 표준어 음조에 문화 차이가 있다고 규정당할 뿐만 아니라, 권력적 위계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문자 기록, 그리고 표준어 체계의 정립은 중심성과 보편성이 떨어지는 것을 언어의 경우는 사투리로, 음악의 경우는 소음으로 배제하였다. 이렇게 배제하다보니 '가가가가가'라는 말 뜻을 문자 그대로와 표준어로는 구분할 수 없게 되었고, 다양성, 더 나아가 문화 정체성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중국이나 한국의 고전 시가를 좋아하는데, 이 시가라는 말에서 원래는 모두 노래의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음을 정확하게 음표로 표현해 낼 수 있다고 믿었던 서양음악과는 달리 대부분의 문화는 이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가끔은 기록하는 방법의 부족함때문에 내가 그 시대 사람들의 정서를 충분히 즐길 수 없다며 아쉬울 때가 있는데, 이 책은 오히려 그래서 재즈의 즉흥성과 자유로움이 느껴지니 오히려 좋아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텍스트로 이뤄지는 대화에서 우리는 사실 상대방의 톤, 즉 음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을 서양의 기보법은 해냈고/혹은 해냈다고 믿었고 오히려 이것이 음악을 더 고착화시키고 권력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푸가라는 작곡 기법은 하나의 선율을 각 성부가 다른 음역대에서 여러 번 연주하는 것으로 다성음악에 의한 대위법적 모방의 한 기법이다. 하나의 선율을 한 성부가 연주한 뒤 이를 따라 다른 성부가 다른 음역에서 모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쉽게 설명하면 기악적 돌림노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정착한 화성법(호모포니)는 독주하는 선율을 나머지 음들이 보조해주는 형식으로 변하였다. 오케스트라에서 제1바이올린만에 주선율을 연주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독일 낭만주의 시대 베토벤이 푸가의 작곡 기법을 적극 도입함으로써 첼로에게도 선율을 부여하였는데, 이는 어쩌면 권력의 다변화 세태에 음악적인 반응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베토벤의 이런 시도와 함께 소외된 악기들이, 즉 첼로나 비올라협주곡 등이 독주 악기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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