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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시 한 수와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사람 사는 느낌으로다가/의미 2009. 8. 19. 10:41

    예전에 어떤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당신은 고문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
    댓글을 남긴 사람들 대부분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며, 손톱 아래쪽만 찔러도 바로 변절할 거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이가 그러더라고요. 자기도 고문을 견딜 자신이 없지만, 자신의 가족, 특히나 자식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면 어떠한 고문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 많고 많은 고문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고문을 고르라면, 바로 자기 눈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찢겨나가는 고문이겠죠. 

    때는 명나라가 건국된 지 얼마 안 되어서입니다.  
    명을 세운 홍무제는 장남이 요절하자 보위를 장손인 이제 막 청년이 된 건문제에게 물려줍니다. 홍무제는 손주에게 황위를 물려주면서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아들들 (즉 건문제의 숙부들)의 권력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에 홍무제는 죽는 순간까지도 손주의 안위를 걱정하며 자기 아들들을 견제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그 아들들 중 엄청난 실력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홍무제의 4남인 연왕 주체였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건문제의 견제에 대항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고 결국 자신의 조카인 건문제를 쫓아내고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건문제는 수도 남경이 함락당하자 위급할 시기에 보라고 남겨둔 할애비의 유지가 든 상자를 개봉합니다. 이 상자에는 승려가 입는 장삼과 머리를 깎는 가위가 있었다고 하죠. 건문제는 승려 복장을 하고 궁전을 빠져나와 목숨을 부지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황제의 자리에 오른 연왕 주체(훗날의 성조/영락제)는 자기 조카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사실이 영 꺼림칙합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세조와 단종) 그래서 당시의 대학자인 방효유(方孝孺)로 하여금 자신의 황위 계승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도록 하기 위해 조서를 쓰도록 명하죠. (주공과 성왕의 관계라는 둥...) 그러나 방효유는 건문제의 스승이자 충직하고 곧은 유학자였습니다. 방효유는 자신의 앞에 대령된 종이 위에 이렇게 씁니다.

    "燕賊篡位 (연의 도적이 황위를 찬탈하다)"

    당연히 영락제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죠. 만약 조서를 쓰지 않으면 방효유의 9족을 주살하겠다고 펄펄 뜁니다. 그러나 방효유도 한성깔 하여 대꾸하기를 10족을 죽여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 하죠.

    영락제는 방효유의 식솔 및 동문 후학들 800명을 방효유가 보는 앞에서 하나하나 죽여갑니다. 방효유는 그 끔찍한 광경에 몸부림 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 모습을 본 방효유의 동생 방효우는 우는 형을 달래기 위해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깁니다.

    阿兄何必淚潸潸,
    取義成仁在此間。
    華表柱頭千載後,
    旅魂依舊到家山。

    (아...해석을 원하십니까. -_- 
    제가 지금 사전이 없어서... -_-;;;
    대충 해석하자면 "형님은 어찌하여 눈물을 흘리십니까. 의를 얻고 인을 이룸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華表(기둥 꼭대기 장식)와 柱頭(기둥 꼭대기)가 그대로 있으니, 이에 의지하여 함께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배경음악: 슈퍼 주니어의 쏘리쏘리쏘리쏘리. 해석 죄송 -_-;;; )

    결국 방효유는 끝끝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800명의 가족, 친척, 동문제자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합니다.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방효유의 충절일 수 있습니다. 무슨 놈의 절개가 그리도 소중해서 자기 주변 사람의 목숨을 자그마치 800명씩이나 앗아가도록 하냐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각이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제가 이 시를 볼 때마다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까닭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올바름을 행하는데 그 댓가가 너무 컸던 방효유의 비통함과 자신의 죽음을 괴로워하며 눈물 흘리고 있는 형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는 동생의 갸륵한 마음 때문입니다. (시 자체로는 상당히 비루합니... -_-; 이 시를 실제로 방효우가 지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 상황에서 이런 시가 전래되기 어려울 것 같거든요. 아마 이 충의지사에 미담을 더욱 아름답게 하기 위해 후대에 지어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예전에 그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약 15년 전에 봤던 글이므로 정확하지 않을 확률이 98%)
    당시 정부는 민주화 항쟁을 하는 김대중을 가혹하게 고문하는 것도 모자라, 그의 어린 아들까지도 김대중이 보는 앞에서 고문을 합니다. 자식을 위해선 죽음까지도 불사할 아비된 자로서 자신 때문에 아들이 고문 당하는 모습을 보는 그의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저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심정을 (물론 헤아릴 순 없겠지만)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옵니다. 

    단지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의지 있는 자로서, 민주화의 투사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고결한 삶을 살다 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