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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을 읽을 때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09. 12. 12. 20:30
    술술 읽히지 않습니다.

    1. 문체 때문인 경우가 있습니다. 
    문체가 너무 고색창연해서 한 문장 읽을 때마다 덜거덕 거릴 때도 있고, 번역체 어투가 마음에 안 들어서 눈살을 찌푸리기도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눈살이 아닙니다. 전 보통 오른쪽 눈에 힘이 들어가면서 찡그려지더라고요. -_~;;)
    이런 경우는 어느정도 익숙해지면 오히려 체화 될 때도 있죠. 어렸을 때는 삼국지를 읽을 때마다―특히 이문열의―제 말투는 이따위로 변했었죠. "그대는~~ 하거니와 ~~하지 않겠는가." 

    2. 형식이 익숙하지 않거나 형식 파괴적이기 때문일 때도 있죠. 
    전 일반적으로 프랑스 역사가의 책을 읽을 때 읽는 속도가 심하게 느려집니다. 그들은 결론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기보다는 이 이야기 했다가, 아! 그러고 보니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하는 식의 갈 之자식 전개를 하기 때문이죠. 페미니즘적 글쓰기로 써내려간 소설도 잘 안 읽히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밑도 끝도 없이 감정의 변화를 써대고 괴롭다고 발광하는 듯한 구성은 오히려 제게 폭력적이더라고요(모더니즘적 글쓰기보다 더). 비슷한 의미에서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꾸역 꾸역 읽었습니다. 솔직히 아케이드 프로젝트 같은 책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해야겠죠. 기승전결, 명징한 사고의 전개가 보이는 쪽이 제 취향입죠.  눼.

    3. 책이 담고 있는, 혹은 은연중에 드러나는 작가의 이념이나 가치관이 제 지향성과 다르기 때문인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수구, 사대주의, 물신숭배의 관념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글이 이 경우입니다. 책은 아니지만, 조선일보의 기사들이 대표적인 예이죠. 한 꼭지의 기사조차 부드럽게 넘어가는 적이 별로 없더라고요. 특히 기획해서 나오는 섹션.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부유층의 천국론, 빈민층에 대한 무배려, 사회적 약자가 자신이 소외되는지도 모르게 따돌리는 교묘한 포장술, 중산층을 배금주의로 치닫게 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강렬한 색채, 돈 받고 쓴 것을 대놓고 티내는 기사를 가장한 광고..., 볼때마다 역겹습니다. 숨을 몰아쉴 때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상업성을 드러내는 글도 잘 읽히지 않아요. 천계영의 만화들이 좀 그렇죠. 이 뿐만이 아닙니다. 비록 많은 생각을 공감하더라도 여성에 대한 기존의 관념이 어쩔 수 없이 표출되는 글을 볼 때면 순간적으로 덜컥해요. 최근 본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가 최인훈의 '광장'을 다룬 부분에서 '이명준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채 전사한 여인 은혜(p151)'라는 작은 부분도 거슬립니다. '자신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임신한 채'라고 쓰는 것이 그다지도 힘든가 말입니다. 제가 좀 까칠하죠. 하지만 너무 만연해 있어서 느끼지 못하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래는 '인생을 두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에 대해서 제가 어렸을 때 쓴 글입니다. 


    4. 책에서 담고 있는 아이디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책 읽기를 멈추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까지 열거한 '책이 술술 읽히지 않는 이유'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면입죠. 눼. 최근에 읽은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신영복의 '강의'는 몇 번이고 책을 놓고 멍하니 천장을 보면서 생각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들의 의견에 대단히 공감해서 그러는 경우도 있고, 그들이 통박하는 논리를 제가 가지고 있었기에 반성하느라 그런 적도 있습니다. 신영복씨처럼 저도 한 때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날카로운 날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회상하고, 지금은 왜 안 그런지 그 이유를 찾으려고 오랜동안 책 읽기를 멈춘 적도 있죠. 물론 막스 베버의 '유교와 도교'마냥 이눔 쉑히 네 이론을 쳐부수겠다, 네 오류를 논증하겠다며 이를 바득바득 가느라 시간이 걸리는 적도 있긴 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매우 좋아하는 사회학자입니다. 다만 이 양반의 동양에 대한 아이디어가 사람 열받게 할 때가 있어서요. ^^;) 

    5. 이에 비해 미친듯이 술술 읽히는 책들도 있긴 했습니다.
    주로 쉽게 써놓은 역사책이 그래요. 대부분의 역사책은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쥐고 읽습니다. 스펙터클 대서사시죠. ㅋ 특히 김학준의 '러시아 혁명사'라는 책은 정말 열렬하게 광분하면서 읽었습니다. 비록 글도 그리 매끄럽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짜깁기한 혐의가 짙게 뿜어져 나왔지만―그마저도 작가 본인이 직접 짜깁기했는지 의문이 가지만―러시아 혁명 자체가 가지고 있는 광대한 힘에 압박 당할 것 같아서 책장을 꽁지가 빠지게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나 이 책을 읽으시려면 헌책방이나 도서관에 가셔서 초판으로 보세요. 천페이지로 증보된 증보판... 그나마 짜깁기마저 게으릅니다. -_-)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책은 보는 내내 펑펑 울면서도 쉬지 않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그 후에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같은 이름의 연설문을 들을 때면 연신 눈물과 콧물을 훔치곤 했죠. 

    그런데, 이제는 이런 책들도 무지 천천히 읽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책을 읽을 때 곱씹는다기 보다는 지식을 머리에 쳐 넣는다는 생각이 강했었거든요. 물론 어렸을 때는 아무래도 머리가 더 잘 돌았으니까 책을 읽으면서 생각도 하는 게 가능했을 지도 모르죠. 그런데 지금은 이런거 안 되고, 잊어버릴까봐 중간중간 메모해주랴, 생각도 써주랴, 멍하니 책 내용을 곱씹으랴... 책 하나 읽는데 무지 시간이 걸립니다. 게다가 한 번에 책을 여러 권 읽는 습관이 더욱 심해져서 책을 들고는 저 번에 이 책에서 뭐라 그랬더라...하면서 기억을 되짚는 시간도 꽤 걸립니다. -_-; 아 이 습관 버려야 하는데 고쳐지질 않아요. 


    - 왜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독서에 대해서 글을 쓰냐면... 유시민 씨의 책에 대해서 블로깅을 할 거거든요 (그것도 포스팅을 두 개나). 제 블로그에 책이라니... 저도 너무 어색하고, 보시는 분들도 괴리감 느끼실까봐 밑밥 까는 겁니다. 우후훗

    - 요즘 한동안 잊었던 독서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근 8년 간을, 전 다른 나라 말로 된 책들만 읽었어요. 모택동은 외국어를 익히지 않고 그 시간에 자기 나라말로 쓴 글들(혹은 옮겨진 글들)을 읽었다고 해요. 뭐, 제가 그 시간에 책을 읽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_-;;; 어쨌든 글은 우리나라 말로 읽어야 제 맛이더라고요. 그간 맛이 안 났어요. 요즘은 맛이 있어요. ^^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