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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진남북조_방술_점복 관련 자료
    學而時習之不亦悅乎/문사철 2010. 1. 16. 02:00


    朱大渭 外 著 魏晉南北朝社會生活史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98

    제8장 宗敎信仰及鬼神崇拜

     


    제2절 方術與天意崇拜

    一. 借方術以通達天意


    占星, 望氣, 風角, 讖緯, 占卜, 相術, 占夢은 사람들이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자주 사용하던 방식임


    ▼占星

    占星은 星象을 인간사에 관련시켜서 星象의 변화로써 인간사의 吉凶을 점치는 방법

    ⇨晉書․天文志: “昔在庖犧, 觀象察法, 以通神明之德, 以類天地之情, 可以藏往知來, 開物成務.” 占星術이 흥기한 연대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음.

    ⇨魏晋南北朝 시기, 점성술의 유행과 영향은 더 광범위해짐. 東漢末 侍中, 太史令은 星象을 빌려 漢이 曹魏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어내어 “前太白守天關, 與熒惑會, 金火交會, 革命之象也. 漢祚終矣, 晉, 魏必有興者.”라 하였으며 얼마 안가 “天命有去就, 五行不常盛, 代火者土也, 承漢者魏也, 能安天下者, 曹姓也, 唯委任曹氏而已1)”하였음.

    ⇨東晉의 대장군인 桓溫이 오래 전부터 찬탈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천문을 아는 사람을 부중에 불러 국운을 물어보니 占星하는 이가 대답하기를 “太微、紫微、文昌三宮氣候如此, 決無憂虞. 至五十年外不論耳2)”라 하여 환온이 찬탈할 뜻을 버렸다고 함.


    ▼望氣

    望氣는 구름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술

    ⇨魏晋南北朝시기에 望氣가 매우 성하였는데, 三國志․魏書․文帝紀에서 조비가 “生時, 有云氣靑色而圜如車蓋當其上, 終日, 望氣者以爲至貴之證, 非人臣之氣.”다 함.

    ⇨동진 초기에 陳敏이 난을 일으킬 때, 望氣를 하는 이가 말하기를 “陳家無王氣, 不久當滅.3)”이라 하였음.

    ⇨東魏 武定4년(546년), 高歡이 군사를 모집하여, 西魏를 칠 준비를 하였는데, 殿中將軍 曹魏祖가 말하기를 “不可. 今八月西方王, 以死氣逆生氣, 爲客不利, 主人則可. 兵果行, 傷大將軍.4)” 하였다 함.


    ▼風角

    風角은 바람을 관찰하여 吉凶을 점치는 것으로 魏晋南北朝시기, 風角은 占星만큼 흥하지는 않았으나 風角을 잘 보는 사람의 기재는 매우 많음. 孫吳의 吳范, 兩晉의 陳訓, 戴洋, 북위의 王早, 東晉北齊의 王春 등이 모두 風角을 잘 하기로 유명했음.


    ▼讖緯

    참위는 秦때 생겨나 東漢시대에 흥성했던 것으로 이것이 나타나고 유행하는 것은 모두 天意符命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

    ⇨위진남북조 시기에 조정에서 讖緯를 금하였으며 讖緯 중 儒家 經典을 附會한 僞書의 영향이 날이 갈수록 적어지고 형식이 간단하여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讖語가 매우 유행하였기 때문에 秦漢시기의 讖緯의 의미가 사라짐.

    ⇨曹魏가 漢을 대체할 때쯤, 太史丞 許芝 등이 상소하여 말하기를 “易運期讖曰:言居東, 西有午, 兩日幷光日居下. 其爲主, 反爲輔. 五八四十, 黃氣受, 眞人出. 言午, 許字. 兩日, 昌字. 漢當以許亡, 魏當以許昌. 今際會之期在許, 是其大效也.5)”라 하였음.

    ⇨兩晉南北朝시기 정부는 여러 차례 참위를 금지하는 조칙을 내렸으나 史籍에는 讖緯에 대한 기술이 빈번하게 등장함. 서진 말에 어린이들의 동요에서 “五馬浮渡江, 一馬化爲龍.6)”라 하였는데 司馬睿와 다른 司馬氏의 4명의 왕이 강을 건넜는데, 司馬睿가 江東에서 칭제하여 東晉을 건립했음.

    ⇨後趙의 石虎때에 “滅石者陵”의 讖이 있어 석호는 蘭陵郡의 이름을 武興郡으로 바꿈.

    ⇨梁이 齊를 대체할 때, 太史令 蔣道秀陳이 蕭衍에게 칭제하는 天文 符讖 64조를 말하였으며, 沈約 또한 蕭衍에게 “行中水, 作天子7)”의 讖을 하였음.

    ⇨북위는 북방을 통치한 기간이 비교적 길며, 정치도 비교적 안정되어 있고 통치자도 讖緯를 엄격하게 금지하여 讖緯가 비교적 적었음. 그러나 북위 말기쯤 되어 조정의 통치력이 약화될수록, 참위가 다시 활발해졌는데 魏書․藝術傳에는 북위말에 劉靈助가 스스로 燕王이라 칭하고 “馴養大鳥, 稱爲己瑞, 妄說圖讖, 言劉氏當王. ”이라 하였음.


    ▼占卜

    占卜은 어떤 종류의 현상을 통하여 미래를 예언하는 방술

    ⇨禮記․表記에서 말하기를 “子言之: 昔三代明王皆事天地之神明, 無非卜筮之用, 不敢以其私, 褻事上帝. 是故不犯日月, 不違卜筮. “라 하였는데 여기에서 卜筮를 사용하여 하늘과 소통하였음을 설명하는 것은 魏晋이전부터 이미 이와 같았다는 것.

    ⇨魏晋南北朝시기 占卜은 天意를 통하는 작용을 하였는데, 三國志․魏書․管輅傳에서는 “父爲利漕, 利漕民郭恩兄弟三人, 皆得躄疾, 使輅筮其所由. 輅曰:“卦中有君本墓, 墓中有女鬼, 非君伯母, 當叔母也. 昔飢荒之世, 當有利其數升米者, 排著井中, 嘖嘖有聲, 推一大石, 下破其頭, 孤魂冤痛, 自訴於天." 於是恩涕泣服罪.”라 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管輅가 卜筮를 통해서 형제의 脚疾을 점쳤음을 알 수 있음.

    魏晋南北朝시기의 占卜에는 다음의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음.

    ① 卦卜: 筮卜, 易卜이라고도 하며, 易經을 이용하여 吉凶을 점치는 것. 晉書․張軌傳에는 “軌以時方多難, 陰圖據河西, 筮之, 遇<泰>之<觀>, 乃投筴喜曰: ‘覇者兆也’ 于是求爲凉州.”라 하였음. 여기에서 <泰>, <觀>은 易經중의 卦名임.

    ② 龜卜: 龜甲을 사용하여 天意를 알고자 하는 것으로 南齊의 柳世隆은 “善卜, 別龜甲, 价至一萬.8)”이라 하였으며, 그가 쓴 龜經秘要는 그 당시 유행했음.

    ③ 鳥卜: 새 소리를 듣고 吉凶을 점치는 것. 삼국시기의 管輅는 이 術을 잘하였다 하는데, 勃海 사람인 劉長仁이 의심하여 말하기를 “夫生民之音曰言, 鳥獸之聲曰鳴, 故言者則有知之貴靈, 鳴者則無知之賤名, 何由以鳥鳴爲語, 亂神明之所異也?孔子曰吾不與鳥獸同群, 明其賤也.” 이에 輅答가 답하기를“夫天雖有大象而不能言, 故運星精於上, 流神明於下, 驗風云以表異, 役鳥獸以通靈. ……此乃上天之所使, 自然之明符.9)라 하였음. 管輅가 보기에 새 울음 소리 또한 天意에 이르는 것이었음.

    ④ 虎卜: 太平御覽 권726에서 博物志를 인용하여 말하기를 “虎知衝破, 又能畵地卜. 今人有畵物上下者, 推其奇偶, 謂虎卜.”라 함.

    ⑤ 棋卜: 동진 시기에 유행. 南史 권36 江謐傳에 따르면 棋卜을 하여 “有客南來, 金椀玉杯.”하였다 함.

    ⑥ 樗蒲卜: 樗蒲는 위진남북조 시기에 성행했던 활동으로 오락뿐만 아니라 점을 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함. 晉書 권123 慕容垂載記에서 前燕이 멸망한 후, 慕容寶가 長安으로 천도하여  “與韓黃、李根等因宴樗蒲, 寶危坐整容, 誓之曰: ‘世云樗蒲有神, 豈虛也哉!若富貴可期, 頻得三盧.’ 于是三擲盡盧, 寶拜而受賜, 故云五木之祥”함.


    ▼相術

    相術은 相人, 相宅, 相墓, 相印 등을 포괄하며, 그 중 相人이 가장 많고 영향도 심대함.

    相人: 사람의 생김새는 하늘이 내린 것으로 그 사람이 聖賢이 되거나 帝王이 되는가, 아니면 일생동안 가난하거나 큰 불행을 겪는지는 天意가 안배한 것으로, 모두 생김새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

    ⇨위진남북조 시기 相人術은 남방과 북방에 모두 퍼져 수백년간 성하였음. 또한 이 시기의 相人 기술은 이전시대보다 더욱 발전하였는데, 첫째, 相人과 관련된 책들이 대량으로 출현하였음. 즉 북조의 來和, 蕭吉 등이 쓴 相經, 相經要錄등이 그것임. 둘째, 暗相, 聲相이 출현하였음.

    ⇨暗相은 손으로 그 사람의 몸을 만져 吉凶을 점치는 것으로 北齊書 권1 神武紀에서 “劉貴嘗得一白鷹, 與神武及尉景、蔡俊、子如、賈顯智等獵于沃野. 見一赤免, 每搏輒逸, 遂至回澤. 澤中有茅屋, 將奔入, 有狗自屋中出, 噬之, 鷹免俱死. 神武怒, 以鳴鏑射之, 狗斃. 屋中有二人出, 持神武襟甚急. 其母兩目盲, 曳杖呵其二子曰:“何故觸大家!出瓮中酒, 烹羊以飯客. 因自言善暗相, 遍捫諸人皆貴, 而指麾俱由神武.”라 함.

    ⇨聲相은 사람이 말하는 목소리를 듣고 吉凶을 헤아리는 것.



    ▼占夢

    占夢은 꿈에서의 정경으로 吉凶을 예측하는 것.

    ⇨三國志․魏書․方技傳에는 周宣이 占夢을 잘하였는데, “嘗有問宣曰:“吾昨夜夢見芻狗, 其占何也?宣答曰:“君欲得美食耳!有頃, 出行, 果遇豐膳. 后又問宣曰:“昨夜復夢見芻狗, 何也?宣曰:“君欲墮車折脚, 宜戒愼之. 頃之, 果如宣言. 后又問宣:“昨夜復夢見芻狗, 何也?宣曰:“君家失火, 當善護之. 俄遂火起. 語宣曰:“前后三時, 皆不夢也. 聊試君耳, 何以皆驗邪?宣對曰:“此神靈動君使言, 故與眞夢無異也. 라 함. 여기에서는 꿈을 天의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魏晋南北朝시기에 占夢術이 성행하였음.


    二. 秘學之興與天人進一步溝通


    위진남북조 시기 方術의 흥성은 미증유의 것으로 史記에 있는 曰者와 龜策 등의 列傳을 통해 西漢시기에 방술은 주로 占候와 卜蓍를 가리킴을 알 수 있음. / 東漢시기 讖緯 및 道術 또한 方術에 들어가게 됨. / 魏晋南北朝시기에 이르러 方術은 즉 占星, 望氣, 風角, 讖緯, 占卜, 相術, 占夢 등을 포괄하게 됨. 즉 각종 방술이 모두 하나의 새로운 개념, 즉 秘學統으로 묶여짐.

    ⇨晉書․藝術傳에는 西晋의 사람인 陳訓이 “少好秘學, 天文、算曆、陰陽、占候無不畢綜, 尤善風角” 하며 또한 相術에도 능통했다 함. 이러한 역사 기록은 秘學과 그 내용을 명확하게 기재하고 있음. 사실 이 학문을 아우르고 諸術을 모두 수련하는 현상은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 예를 들어 삼국시대 管輅는 “果明周易, 仰觀、風角、占、相之道, 無不精微.10)”하였다 하며, 蜀漢의 周群은 占星 뿐만 아니라, 相術에도 능통했다 함.

    ⇨이 이후에도 이러한 현상은 역사에 끊임없이 기록되어 있는데, 晉나라 사람인 索紞은 “明陰陽天文, 善術數占候” 하며 또한 占夢을 잘했다 함.11)

    ⇨北齊시기 高陽 사람인 許遵은 “明易, 善筮, 兼曉天文, 風角, 占相, 逆刺, 其驗若神.12)

    方術이 秘學으로 통일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것들 간에는 공통성이 있었기 때문, 즉 그것들은 天意에 이르는 기능을 하였음.


    상당히 성숙한 방법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秘學의 흥성했음을 알 수 있음.

    ① 折字法: 이 방법은 讖緯, 占夢에서 자주 보이는 것으로 16국 前秦 符堅이 즉위한 후에 新平 사람인 王彫는 圖讖하여 말하기를 “當有草付臣又土, 滅東燕, 破白虜, 氐在中, 華在表.”13)라 하여 이 讖緯는 符堅이 前燕을 멸망시킬 것임을 신비적인 색채로 설명하고 있음.

    ② 諧音法: 東晉 穆帝 昇平 말년, 민간에서 廉歌가 매우 성행했는데, 術士인 扈謙이 말하기를“廉者, 臨也. 歌云 '白門廉, 宮庭廉', 內外悉臨, 國家其大諱乎!14)라 하였다 함. 扈謙은 占卜에 능했다 하는데 廉臨의 두 음을 서로 조합하여 미리 穆帝의 凶을 점친 것임.

    ③ 附會法: 附會는 즉 원래 상관이 없는 일을 연계하는 것으로 이러한 방법은 占卜, 占星, 占夢에서 자주 보임. 삼국 시기 管輅는 占卜을 잘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世有軍事, 則感鷄雉先鳴, 其道何由?復有他占, 惟在鷄雉而巳?輅言:“貴人有事, 其應在天, 在天則日月星辰也. 兵動民憂, 其應在物, 在物則山林鳥獸也. 夫鷄者兌之畜, 金者兵之精, 雉者離之鳥, 獸者武之神, 故太白揚輝則鷄鳴, 熒惑流行則雉驚, 各感數而動.”하였다 함.

    ④ 易經法: 易經을 이용하여 占卜하는 것으로 앞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여러 가지 方術이 이 방법을 사용함. 西晋 시기에 張宅이 꿈에서 말을 타고 산을 올랐는데 세 번 주위를 둘러봐도 松栢만 있을 뿐 문을 보지 못했다고 하자 索紞이 占夢하여 말하기를 “馬屬離, 離爲火. 火, 禍也. 人上山, 爲‘凶’字. 但見松伯, 墓門象也. 不知門處, 爲無門也. 三周, 三期也. 后三年必有大禍15).” 索紞이 말한 “馬屬離, 離爲火.”는 즉 易經에 나오는 말임.


    方術의 직업화 또한 秘學이 흥성했음을 나타내는 것임.

    ⇨南齊書․王晏傳에는 “晏輕淺無防慮, 望開府, 數呼相工自視, 云當大貴.”

    ⇨北齊 시기 어떤 여성이 “卜相于市者, 言人吉凶頗驗”


    위에서 언급한 것인 魏晋南北朝시기에 秘學이 흥성했음을 설명하는 것임. 이러한 秘學 흥성의 두드러진 결과는 天人之間의 소통이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것임. 甲骨文에서의 “上帝”는 西周의 “昊天”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제자백가 著作 중의 “天”은 董仲舒의 “天道”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주로 정치사상 및 철학 사상의 각도에서 인간과 天의 관계를 탐구하였음. 魏晋南北朝시기의 秘學은 사회생활의 각도에서 天人關係를 정치생활, 군사생활, 일상생활의 활동으로 구체화한 것임. 秘學은 인간과 세계간의 여러 가지 현실적 필요와 연계되어 있음.

    ① 社稷의 榮古盛衰를 預知함: 東晉 廢帝 司馬奕은 術士인 扈謙에게 제위가 안정되어 있는지를 점치라고 하였는데, 扈謙이 대답하기를 “晋室有盤石之固, 陛下有出宮之象.16)”라 하였음. / 삼국의 孫吳 孫皓 때 讖을 하는 이가 말하기를 “吳之敗, 兵起南裔, 亡吳者公孫也17).”라 하니 孫皓가 이를 듣고 公孫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廣州로 쫓아내었다 함.

    ② 전쟁의 勝負를 예측함: 東晉 초 王敦이 거병하니 조정에서 蘇峻에게 토벌하도록 함. 蘇峻은 “卜之不吉, 遲迴不進18).”하였다 함. / 劉宋末期, 蕭道成과 王敬은 廢帝인 劉昱을 죽이고 順帝 劉准을 세우려고 함. 沈攸가 이를 듣고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려고 하여 占星人인 葛珂에게 물으니 葛珂가 대답하기를 “自古起兵, 皆候太白. 太白見則成, 伏則敗. 昔桂陽以太白伏時擧兵, 一戰授首, 此近世明驗. 今蕭公廢昏立明, 政値太白伏時, 此與天合也. 且太白尋出東方, 東方利用兵, 西方不利19).”하였다 함.

    ③ 운명의 窮達을 예측함: 양무제의 貴嬪인 丁令光은 태어날 때, “有神光之異, 紫煙滿室”하여 相者는 “此女當大貴20)”라 하였음.

    ④ 인생의 貧富를 예측함: 西晋때, 鮑璦家에 喪과 病이 많고 빈곤하여 점을 치니 淳于智가 말하기를 “君安宅失宜, 故令君困. 君舍東北有大桑樹, 君徑至市, 入門數十步, 當有一人持荊馬鞭者, 便就買以懸此樹, 三年當暴得財21).”

    ⑤ 수명을 예측함: 삼국시기 管輅와 魏郡太守 鍾毓 “卜可知君生死之日. 毓使筮其生日月, 如言無蹉跌. 毓大愕然, 曰:“君可畏也. 死以付天, 不以付君.”22)이라 함.

    ⑥ 일의 吉凶을 예측함: 西晋때 廬江사람인 韓友가 점을 잘 쳤는데 邊洪이 자신 집안의 안녕을 묻자 韓友가 대답하기를 “卿家有兵殃, 其禍甚重. 可伐七十束柴, 積于庚地, 至七月丁酉放火燒之, 咎可消也. 不爾, 其凶難言.23)”이라 함.

    ⑦ 病과 재앙을 면하고자 함: 東晉 王導가 병이 많아서 항상 걱정하다가 術士인 陳訓에게 관상을 보이니 陳訓이 말하기를 “公耳豎垂肩, 必壽, 亦大貴, 子孫當興于江東.24)”하였음.

    ⑧ 실종된 사람을 찾음: 삼국시기 劉寔이 管輅에게 실종된 부인을 찾고자 하니 “路中小人失妻者, 輅爲卜, 敎使明旦於東陽城門中伺擔豚人牽與共斗. 具如其言, 豚逸走, 卽共追之. 豚入人舍, 突破主人甕, 婦從甕中出.25)”라 함.

    ⇨이 외에도 잃어버린 물건을 찾거나, 아들을 낳는지, 딸을 낳는지, 또는 婚姻에 대한 일을 묻거나, 相宅의 吉凶과 墓地를 찾는 것 등이 있었음.

    여기에서 여러 가지 方術로써 세간의 필요를 충족시켰음을 알 수 있음. 이는 秘學이 方術들을 통일하여 자신의 체계를 만든 후에 사회에 대한 영향이 이전보다 더욱 심대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임. 社稷의 榮枯盛衰, 전쟁의 승패, 운명, 인생의 빈부, 수명, 일의 길흉, 액운을 떼어내고 婚姻之事를 묻는 것까지, 이 모두는 사회 각계 사람들의 생활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음.


    三. 對天意崇拜的幾點認識


    왜 魏晋南北朝시기 天意 崇拜가 사회적인 崇拜 意識으로 발전하였는가? 그것이 일종의 문화 현상으로써 당시에 끼친 영향은 어떤 것인가?

    魏晋南北朝시기 天意崇拜는 오랜 역사 연원을 가지고 있음.

    ⇨첫째, 甲骨卜辭에서 “天”의 출현과 “天”과 “帝”의 출현은 서로 통함. 殷商시기의 사람들은 이미 모두 天을 숭배하고 있었음. 곽말약은 靑銅時代에서 은나라 사람의 가장 높은 신인 帝는 또한 그들의 조상이기도 함을 지적하고 있음. / 공자는 말하기를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逾矩.” 라 하였으며 또한 말하기를 “君子有三畏: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이라 하였음. 공자는 귀신을 믿지 않았으나 天意에 대하여 鬼神에 대한 것과 같이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음. / 孟子는 더욱 명확하게 天을 의지적으로 파악하였는데 그는 “舜、禹、益相去久遠, 其子之賢不肖, 皆天也, 非人之所能爲也. 莫之爲而爲者, 天也;莫之致而至者, 命也.”라 하였음. / 董仲舒에 이르면 天의 의지와 情感은 인간처럼 풍부해짐. 그는 “天亦有喜怒之氣, 哀樂之心, 與人相副, 以流合之, 天人一也. 春喜氣, 故生; 秋怒氣, 故殺; 夏樂氣, 故養; 冬哀氣, 故藏. 四者天人同有之.26)” 물론 董仲舒의 “天人一也”는 天則人, 人則天으로 이해할 수는 없음. 전통적인 관념에서 天은 인간세상을 주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며 董仲舒의 여러 논술 중에서도 이러한 관념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天人一也”는 喜怒哀樂이 天과 人이 같이 가진 것으로 天은 인간세상의 喜怒哀樂을 주재하며, 여기에서의 인간은 상층사회의 帝王臣僚부터 하층사회의 庶民百姓까지 포괄하는 것임. 董仲舒의 天人感應이 주로 天과 제왕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으나 위와 같은 思路로 보건대 東漢末의 황건 기의가 “蒼天已死, 黃天當立”의 구호를 주장한 것은 하층 서민사회의 각도에서 天과 인간과의 연계를 세웠기 때문임. 魏晋南北朝사회의 天意崇拜意識은 殷商이래로 天을 숭상했던 사상이 발전한 결과라 할 수 있음.

    ⇨둘째, 魏晋南北朝시기의 天意崇拜는 사람들이 현실 생존 환경에서 발견한 일종의 이상적인 추구임. 魏晋南北朝시기처럼 정권이 빈번하게 교체되는 것은 역사상 없었던 일로 왕조가 바뀔 때마다 어떤 황족은 應天受命하였으며, 어떤 황실은 그 수명을 다하였고, 문벌귀족들은 鞏固, 動搖, 衰落의 궤적이 비슷했음. 또한 오랜 동안의 분열로 계급간의 모순이 격화되었고 각 정권은 전쟁을 하였으며 농민전쟁도 끊임없이 일어났음. 이러한 환경에서 사직의 榮枯盛衰, 전쟁의 승부, 운명의 窮達, 인생의 빈부, 수명, 길흉 등은 사회 각 계층의 보편적인 관심이 되었음. 결국 인간으로써의 자신의 힘이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蒼天에 기대게 된 것임.

    ⇨셋째, 魏晋南北朝시기 天意崇拜가 불교를 변화하는데 끼친 영향. 예전의 天意崇拜는 강렬한 현실 목적을 가진 것으로 당시 사람들의 현세의 이익을 추구하는 문화 태도를 가졌는데 이러한 태도는 佛敎와는 대립되고 상충되었음. 초기 불교는 일종의 出世間的 세계간을 가지고 생명 활동의 과정에서 초탈해야지만 영원한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음.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수명과 귀천, 길흉 등은 모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음. 그러나 晉書에 따르면 당시의 佛圖澄이라는 승려는 天竺의 고승으로 중원에 들어온 후 占夢등으로 後趙 임금의 신임을 얻었으며 魏書․術藝․王顯傳의 기재에도 北魏의 王顯이 布衣諸生 때, “有沙門相顯後當富貴, 誡其勿爲吏官, 吏官必敗.”하였다 함. 결국 승려들은 占卜, 占夢, 讖緯, 相人등의 術을 익혔으며 이러한 方術을 이용하여 길흉과 귀천을 말하였음. 이는 天意崇拜가 佛敎를 변화시킨 것으로 불교의 종지와는 배리된 것임.



    1) 三國志․魏書 권1


    2) 晉書 권82 習鑿齒傳


    3) 晉書 권95, 藝術․陳訓傳


    4) 北齊書 권2, 神武紀 下


    5) 三國志․魏書 권2, 文帝紀


    6) 晉書 권6, 元帝紀


    7) 梁書 권13 沈約傳


    8) 南齊書 권24, 柳世隆傳


    9) 三國志․魏書 권 29, 方技傳


    10) 三國志․魏書 권 29, 方技傳


    11) 晉書 권 95 藝術․索紞傳


    12) 北齊書 권 49 方技․許遵傳


    13) 晉書 권114 符堅載記


    14) 晉書 권28 五行志 中.


    15) 晉書 권95 藝術․索紞傳


    16) 晉書 권8 海西公記


    17) 三國志․吳書 권3 孫皓傳


    18) 晉書 권100 蘇准傳


    19) 宋書 권74 沈攸之傳


    20) 梁書 권7, 皇后․高祖于貴嬪傳


    21) 晉書 권95 藝術․淳于智傳


    22) 三國志․魏書 권29 方技傳


    23) 晉書 권95 藝術․韓友傳


    24) 晉書 권95 藝術․陳訓傳


    25) 三國志․魏書 권29 方技傳


    26) 太平御覽 권1 天部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