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잤을 뿐......
    여행/그리고 여러 나라 2013. 5. 15. 21:42

    그러니까 지금부터 '여행'이라는 카테고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야말로 업무의, 업무에 의한, 업무를 위한 몽골 출장을 기록하려고 한다. 출장이 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좀 과해서 말이다. 이번 몽골 출장으로 나는 자칭 유목민 전담, 타칭 출장전문 직원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정말 그 무엇도 구경할 수 없었던 출장. 일 외에는 다른 건 하나도 하지 못했던 출장.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었던 출장. 이름하여 몽골 출장 되겠다. 


    내가 아무리 날고 기는 (주로 기는) 직장의 신이지만 (미모로 따지자면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 정도? 이걸 유머라고...) 몽골어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 카자흐스탄에 이어 또다시 통역님을 대동하였다. 원래는 출장도 혼자 가는 거였는데, 평소 예뻐하던 후배님이 혼자는 너무 고생스러워서 도저히 못 보낸다며 출장에 자원해서 딸린 식구가 늘어났다. 


    출장은 출발부터 삐그덕 거렸다. 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에 몸을 실었는데, 원래 7시 40분인가가 출발 시간이었던 비행기가 4시간 정도 연착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와 후배님은 공항에서 하릴없이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예를 들면 면세품 구매. 저 후배님의 등빨을 가리는 엄청난 대형 쇼핑백 안에 내 물건은 하나도 없고 다 부탁 받은 것이라는 게 함ㅋ정ㅋ.
























    책도 읽고(몽골에 가면서 읽는 책은 뜬금없이 아프리카 역사), 마이피플도 하고, 밥도 먹고, 통역님과 첫인사도 하고, 몽골 역사 얘기도 하고, 그러다가 완전 지쳐있을 때 즈음 대충 탑승 시간이 되어서 탑승 게이트로 향하는데, 그때 내 눈을 의심하게 한 이 하얀 글자. 




    비행기가 또 연착이 되어서 무려 새벽 1시 20분에 출발한다는 것이다. 예전 후쿠오카 출장에 이어 또다시 공항에서 8시간을 기다리는 사태 발생. 밤에 기다리려니 더 힘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몽골 칭기스칸 공항에 도착해서 짐 찾고 호텔에 도착하니 멀리 동이 터오고 있었다. 1시간 정도 쉬고 바로 업무 시작. 할 수 있는 몽골어라고는 두 마디, 세응베노~(안녕하세요)와 빠야랄라(감사합니다)로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정말 중간중간 너무 졸려서 정신을 잃을 뻔 했는데 그때 나를 지탱해줬던 것은 호텔 방에 비치되어 있던 맥심 커피 믹스. 와우~ 놀라운 믹스드 커피의 힘.


    같은 일로 함께 갔던 다른 팀들은 모든 일정이 끝난 후 테를지 국립공원에 갔으나, 우리는 또다시 개별 업무투입. 그 업무의 일환으로 가게 된 곳 중 한 곳이 한국어 수업이 개설된 제23번 학교였다. 몽골은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한 학교에서 계속 다니는 시스템이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초등학교 반 한국어 시간을 잠시나마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한국 아이와 똑같이 생긴 몽골 아이들은 외국에서 온 (생긴 게)이상한 손님들에게 관심을 표하며 한국어로 말을 걸었는데, 어떤 아이들은 정말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는 정도였다.(교실 벽에 걸려 있던 롤링페이퍼에 이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한국으로 돌아간 선생님에 대한-아마 Koica 사업의 일환인 듯?-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어서 후배님이 눈물을 흘릴 뻔 했던 일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몽골까지 갔건만 구경한 것은 울란바타르 시내 반경 2km뿐. 그 안에서 택시를 타고 뱅글뱅글 맴돌았을 뿐이다. (몽골도 카자흐스탄처럼 그냥 지나가는 차 잡아타고 가면 되는 곳이었다) 울란바타르는 뭐랄까, 날씨 때문인 듯 싶지만 잿빛 도시의 느낌이 났다. 그곳에서 1시간만 벗어나도 초원이 있고, 푸른 하늘이 있는 대자연이라는 데 말이다. 업무차 주몽골한국대사관에 들려 서기관님도 만났는데 이 울란바타르가 분지 지형인데다가 주변에 화력발전소가 있고, 도시 주변의 유목민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게르에서 소각하는 각종 오염물질(폐타이어 등)이 울란바타르 시를 벗어나지 못해 공기가 좋지 않다 한다. 행정적인 면에서도 공직자들을 기용할 때 엽관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직자들이 대거 교체가 되어 업무의 지속성에 애로사항이 있다 하였다. 경제성장률 18%로 세계 1위의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몽골의 어두운 단면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대한 엄청난 관심과 특유의 역동성과 과단성,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했던 역사와 드넓은 대자연이 있어 기대가 되는 나라가 또한 몽골이다.

























    갑자기 나온 술사진. 훗훗. 칭기스칸 공항에 내려 칭기스칸 호텔에서 묵고 술도 칭기스칸 맥주와 칭기스칸 보드카를 마셨다.(칭기스칸 보드카와 맥주를 섞는 폭탄주, 폭탄주를 처음 마셔봤는데 목넘김이 예술이로다. 칭기스칸 보드카 큰 거 한 병 나 마시려고 사온 것은 뷔밀) 하긴 나라도 천하를 호령했던 칭기스칸이 자랑스럽기는 할 것 같다. 칭기스칸 호텔은 몽골 최초의 4성급 호텔이라고 하는데, 시설은 그냥 저냥이었다. 마침 내가 묵고 있었던 같은 층에 있던 연회장에 무슨 환갑잔치 느낌이 나는 행사가 있었는데 들리는 노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정말 어딜 가나 강남스타일은 축제의 노래가 된 듯하다. 



    한국음식점에 가서 한국 음식도 먹어보고, 요즘 몽골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라는 곳에서 몽골-서양 퓨전 요리도 먹어봤는데 가장 입맛에 맞았던 것은 23학교 근처에 있었던 중국음식점의 요리. 너무 오랜만에 채소를 먹을 수 있어서 그랬나보다. 중국산일 것이 뻔한 저 브로콜리를 정말 허겁지겁 먹었다는 것은 뷔ㅋ뮐ㅋ. 그러고보면, 나는 원래 여행지에서는 음식도 잘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는 예민한 심성의 소유자였는데 언제부턴가 외국에서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자는 착한 어린이가 되었다. (이제 잘 싸기만 하면 됨)













    진퉁 몽골을 보고 오지 못해서 여러모로 아쉬운 이번 몽골 출장. 그래도 그 누구보다 많은 몽골 사람들을 만나고 온 출장이었다. 다음에는 별보기 좋아하는 동생님과 같이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잠도 거의 못 자고 고기와 술만 먹다 돌아온 몽골 여행기X, 출장기O 를 마친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