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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p] 할아버지께 스마트폰을 (feat. 팀뷰어(TeamViewer)로 원격 관리)
    사람 사는 느낌으로다가/현대인 2019. 10. 14. 14:39

    내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소중한 외할아버지가 계시다(읭).

    재작년에 70년을 해로하시던 외할머니를 떠나 보낸 후 홀로 적적해 하시는 것 같아서 뭔가 방법을 강구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스마트폰을 쥐어드리자였다. 

    할아버지에게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현역으로 짱짱하게 돌아가는 애니콜 슬라이드 폰이 하나 있다. 자식들이 스마트폰 하나 해드리겠다고 하면 할아버지는 손사래를 치셨다. 그래서 최대한 할아버지의 생활 방식을 건드리지 않고 스마트폰을 접하도록 하고싶었다. 돈 쓰는 것도 굉장히 싫어하셔서 돈이 안 드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남는 스마트폰에 데이터쉐어링 유심을 끼워 드리는 것이었다. 나는 마침 kt 데이터온 비디오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요금제가 사실상 데이터 무제한에 데이터쉐어링에도 제한이 없다(100기가 제한이지만 한 달 내내 토렌트와 바이뚜를 돌리며 안간힘을 써도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이 60기가였다. 그리고 이 요금제를 (구)가족결합을 사용하여 한 달 36천원 정도에 사용 중이다. 껄껄). 할아버지 댁에는 와이파이가 없지만 데이터 팍팍 쓰셔도 별 문제될 것이 없다. 전화는 기존의 핸드폰을 사용하시면 된다.

    먼저, 친구가 스마트폰을 바꾸면서 준 공기계를 공초한 후 데이터쉐어링 유심을 하나 장착하였다(유심비 약 8천원 소요).

    쓸데없는 어플들은 다 지우거나 앱서랍에 넣어 두고, 홈화면에는 시계 및 날씨(위젯), 카카오톡, 유튜브, 미세미세(위젯), 손전등(위젯), 인터넷, 카메라 정도만 깔아서 홈화면 하나에만 배치하였다. 시력을 감안하여 모두 글씨 폰트를 최대로 키워놓았다. 할아버지가 그리워하시는 외할머니 생전에 찍었던 동영상 등도 넣어드렸다.

    그리고 또 하나 설치한 어플이 하나 있으니 바로 팀뷰어(TeamViewer)이다. 이제야 나왔구나 이 글의 주인공.

    팀뷰어(TeamViewer)는 스마트폰끼리 원격제어를 하는 어플이다. 공사가 다망하여 할아버지 댁을 자주 방문하기는 어려운지라 어머니께 스마트폰 전달을 부탁드렸다. 내 핸드폰에는 팀뷰어를, 할아버지 핸드폰에는 팀뷰어 퀵서포트(TeamViewer QUICKSUPPORT)를 깔고 할아버지 스마트폰에 나온 숫자 ID를 입력하여 연결여부를 확인하였다. 사실 사용법은 워낙 간단해서

    할아버지는 스마트폰이 처음인지라 어머니께 원격제어를 수락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어머니도 스마트폰에 그렇게 능숙한 편은 아닌지라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리고 대망의 그 날. 나는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하며 할아버지 폰 설정을 하였다. 다른 것은 다 되어 있는데 카톡이 문제였다. 실제 사용하는 핸드폰과 카톡 폰이 다른지라 전화번호 인증 등을 받아 설정해야 했다. 원래는 전화번호도 임의로 생성해서 카톡 설정까지 완벽하게 해서 보내드릴까 생각했지만(내가 그런 식으로 카톡을 사용 중이다 -_- 내 전화번호를 안다고 해서 나와 카톡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편하게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보였다.

    팀뷰어 원격제어를 통해 할아버지의 애니콜 핸드폰으로 온 문자 인증을 받아 차근차근 카톡을 설정하였다. 연락처는 내가 원격제어 상태에서 하나하나 등록하였다. 일단 어머니 번호, 내 번호, 이모와 삼촌 번호 등을 친구로 추가하였다. 원격제어인지라 엄청 부드럽지는 않지만 못 다룰 정도는 아니다. 대략의 설정을 마친 후 원격제어를 끊었고, 이후 할아버지께 드린 스마트폰으로 다시금 영상통화를 시도하였다.

    어머니는 잘 된다고 좋아하셨고, 어머니 뒤로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계속 하시는 말씀이 "복잡해요. 골 아퍼요" ㅋㅋㅋㅋㅋ

    할아버지는 신문물에 스트레스를 받고 계신 듯 했다. 괜한 짓을 했나 싶기도 하지만 난 할아버지를 믿었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절(!) 이북에서 공과 대학을 다니셨고, 아직도 고장난 기계를 잘도 고쳐주시는 마이더스의 손이다. 내가 기계를 두려움 없이 척척 다루는 것도 다 할아버지 유전이라고 생각한다(엄마와 아빠는 기계쪽에서 처참하다). 

    이후 직접 가서 마저 점검을 하였다. 내가 미처 등록하지 못한 이모부와 사촌동생들이 할아버지를 카톡에서 발견하고 말을 걸어왔는데 할아버지가 키패드를 쓰지 못해서 내가 대신 대답을 해주었고 용건이 있으면 보이스톡이나 페이스톡을 하라고 알렸다.  

    이렇게 해드린 게 올해 3월 초였다.

    할아버지는 요즘 매일같이 카톡을 하신다. 특히 라오스에 사는 이모가 할아버지와 자주 통화할 수 있어 한시름 놓았다고 하더라. 때로는 할아버지 발(發) 영상통화 테러로 힘들다고 하지만 말이다. ㅋㅋ 나도 야구장에서 야구 보다가 할아버지 영상통화를 받고 옆에 있는 친구도 보여달라고 하셔서 친구도 할아버지께 인사드리고 야구장도 보여드리고 뭐...

    할아버지는 영상통화로 증손주들의 재롱도 보시고, 카톡으로 보내드리는 사진과 영상도 보시고, 유튜브에서 노래도 들으시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신다. 구형폰으로는 오지 않는 긴급재난문자도 받아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공기청정기도 트시고 말이다. 노인정에서 이모와 통화하며 저기가 라오스라고 자랑도 하시고. 명절에나 만나는 증손주들이 할아버지를 어색해하지 않는 것도 모두 영상통화로 자주 접해서 그런 거라며 할아버지는 추석 때 내가 옆자리에 앉자 "고마워요, 아주 고마워요! 잘 쓰고 있어요" 라고 하시더라. 할아버지가 이리도 좋아하시니 뿌듯함에 마음이 뻐렁친다.

    물론 며칠 전에 가서 스마트폰 기능 조금 더 알려드렸다가 다시금 "골 아퍼요, 복잡해요" 콤보를 맞고 좌절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멀리 계실 때에는 잊지말자 TeamViewer.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