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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코) 프라하 - 블타바에서의 뱃놀이, 우 즐라테호 티그라
    여행/체코-헝가리 2020. 4. 24. 16:52

    블타바에서의 뱃놀이는 여행 전부터 친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꼭 하기로 약속한 것이었다. 뱃놀이 자체보다는 여행지에서 시선의 높이를 바꾸고 싶었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블타바를 그리며 왔는데 블타바를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도 아쉬웠고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보무도 당당하게 슬로반스키 섬으로 향하였다. 입구에 들어가는데 날벌레들이 엄청났다. 그리 깊지 않은 하천에 수풀이 우거지다 보니 필연적으로 유속이 느려지고 거기에 벌레들이 우글우글하다. 물론 잠실야구장에 출현하는 동양하루살이 떼의 혐오스러움에는 필적하지 못하지만. 동양하루살이 떼가 최고존엄이시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당면한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입을 열면 입에 들어갈까, 눈을 뜨면 눈에 들어갈까, 우리는 손을 훠이 훠이 휘저으며 입도 완료. 페달보트 대여소를 찾아 한 바퀴 크게 돌았다.

    대여소는 두어 군데가 있었는데, 그 중 섬의 동쪽에 있는 대여소에서 보트를 대여했다. 한 시간에 한화로 약 15,0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너무 신나서 보트에 탑승한 후에야 맥주 같은 음료수를 안 산 것을 알고 후회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생수가 있으니 괜찮아.

    우리 여행 사전에 유유자적한 뱃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말인가. 배에 타자마자 사이클 선수 마냥 페달을 힘차게 굴렀다. 잔뜩 메긴 화살처럼 출발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쏜살같이 짓쳐나간다. 강물에 둥실 뜨니 프라하의 경관이 달리 보인다. 멋진 광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싶은 나머지, 계속 돌아! 돌아!를 외치며 소용돌이에 빠진 보트처럼 방향을 수십 번 전환하였다. 블타바에서 가장 바삐 움직이는 페달보트는 바로 우리의 것. 배경 음악으로는 스메타나의 블타바를 틀어놓고, 주변을 구경하며 초고속 회전 뱃놀이에 여념이 없었는데 강물에 떠밀리며 배가 노란 부표 근처까지 흘러갔나 보다. 노란선은 유람선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페달보트에게는 위험한 구역이다. 갑자기 모터보트가 우리에게 오더니 넘지 말라고 경고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유람선보다 모터보트가 우리에게 던지고 간 파장이 더 컸다. 엄청난 출렁거림 속에 또다시 재게 페달을 밟아서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거슨 마치 지구 탈출 속도.

    그렇게 구경하다가 조금 더 상류로 가니 프랭크 게리의 '댄싱 하우스'가 멀리 보인다. 우리는 또다시 사이클링 선수 모드를 on 하고 댄싱 하우스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너무 하류 쪽에서 오래 논 나머지 댄싱 하우스 근처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서 시간이 촉박했다. 뱃놀이인지 극기훈련인지 모를 운동량으로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려 댄싱 하우스를 구경한 후 다시 배를 대여소에 반납하기 위하여 페달을 굴렀다. 내가 혹시 위에 "뱃놀이 자체보다는 여행지에서 시선의 높이를 바꾸고 싶었다고" 쓴 것을 봤다면 그건 오해다. 초사이언 뱃놀이도 매우 즐겁다.

    블타바에서의 페달보트 투어, 특히나 낮과 밤이 만나는 황혼 시간의 뱃놀이는 프라하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원체 액티비티를 즐기기도 하지만, 이때의 평화로우면서도 활동적이었던 시간은 행복감만 가득한 기억이다. 얼결에 프라하 좋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

    배를 반납한 후 아까 너무 급하게 봤던 댄싱 하우스를 실물로 영접하였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본 인상 깊었던 건축물인데 프라하에 있다는 건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았다. 가까이서 보니 참으로 유려하다. 잠시 위에 올라가서 음료라도 마실까 하다가, 저녁 때라 술집에 가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자리를 옮겼다. 바로 어제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했던 우 즐라테호 티그라(U Zlatého Tygra)라는 술집이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분위기에 너무 놀라서 그냥 나와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이 술집에 대한 이야기는 https://leonpero.tistory.com/1012에서도 떠들었다)

    우 즐라테호 티그라, 황금호랑이(호랑이 맞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웃 사이더 중의 아웃 사이더인지라,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중급 아웃 사이더 정도는 되어서 시끌벅적한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좀 힘들어한다. 사람이 드문드문하게 앉아있는 식당의 후미진 곳에 자리 잡아야 편해지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 술집은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은 남자들이 (여자는 딱 한 명) 하나같이 스파르타를 외치는 듯하다. 세상에 이렇게 시끄러운 술집이 또 있을까. 심지어 서버도 무섭다. 초급 아웃 사이더인 친구의 눈이 나가자고 동공 지진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그냥 머물기로 결정. 우리는 자연스레 두 사람이 있는 테이블에 합석했다.

    잔뜩 굳은 친구와 나는 결국 적응에 실패하여 얼른 마시고 나가자는 듯이 맥주만 들이켰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안타깝게도 내 옆에 앉은 사람은 술을 마시면 개가 되는 사람인지 엄청 치근덕거려서 당황스럽고 불쾌했다. 면상에 죽빵을 날리고 싶었지만 최대한 정중하게 그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낸 후 친구 옆에 앉은 사람과 굉장히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그는 알고 보니 체코 프로 축구팀의 감독으로 불교 신자라고 한다. 체코 술집에서 만난 불교 신자 프로 축구 감독이라니 특이하다. 이래서 보후밀 흐라발이 이 곳을 매일같이 찾아왔나 보다. 그는 부족한 영어로나마 자신의 종교관에 대해서 설파하려고 노력했다. 비시즌이면 네팔이나 스리랑카 등의 나라에 가서 불교 스승의 가르침을 구한다고 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흥미로운 사람과 안주 하나 없이 맥주만 들이키며 한 후 우리는 거나해진 기분으로 술집에서 나왔다. 아웃 사이더의 교본인 나는 여행지에서 그 나라 사람과 교류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재미도 나쁘지 않다. 친구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는지 우리는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블타바에서의 뱃놀이부터 이 술집까지 프라하에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다. 이렇게 온전히 프라하를 즐기는 마지막 날이 저물어간다.

    내일은 쿠트나 호라이다. 체스키크롬노프와 쿠트나호라 중 어디로 갈지 계속 줄다리기를 했었는데 의외로 결과는 싱겁게 나왔다. 전날에 체스키 크롬노프로 가는 교통편을 구하지 못하면서 쿠트나 호라로 쿨하게 결정. 여행 계획을 짤 때 모든 것을 감안하여 촘촘하게 짜기도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즉흥성도 즐기는 편이다. 여행이 원래 그런 거 아니겠는가. (체스키 크롬노프로 갈 수 있는 다른 방안도 있었지만 쿠트나 호라가 살짝 더 끌렸던 것은 안 비밀)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