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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코-헝가리 여행을 준비하면서 읽으려던 소설 중
    여행/체코-헝가리 2019. 7. 9. 14:11

     

    숙소 및 교통 예약, 관광지 및 맛집 선정 등 여행의 현실적인 면과는 사뭇 동떨어졌지만 여행을 즐기는 데에 꼭 필요한 몇 가지 준비가 있다. 여행지에 관한 다큐를 보거나, 역사책, 여행기를 읽는 둥의 직접적인 준비가 있는가 하면, 목적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그 지역 소설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 그것이다. 영화도 좋은 매개체가 되겠지만 흥미가 없어서.

    이번에 가는 체코나 헝가리는 문화/역사적으로 그다지 친숙하지 않다. 체코는 음악이나 미술은 좋아하지만 언어적으로 그들의 삶을 느낄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많이 불안했다. 내가 이 문화를 더 흠뻑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가뜩이나 짧은 여행 기간인데 그마저도 경관, 음식, 사람에 대한 피상적 느낌만 받고 오는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되었다. 흑흑. 안타깝게도 부족한 것은 시간이요, 넘치는 것은 게으름이라 도서관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책을 거의 그대로 반납하는 기염을 토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건진 몇 권의 책이 있어 얘기해보려고 한다.

    일단 후배가 권해준 책이 한 권 있었다. 작가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단다. 도대체 책을 읽었다면서 왜 이름을 기억을 못 하냐고 구박을 했건만 이제는 이해가 간다. 쉽지 않은 이름. 바로 보후밀 흐라발이다. 그가 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는데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엄청난 소음이 들리는 것 같다. 무엇 하나에 오롯이 집중할 수 없는 내 마음 상태에서 비롯된 머릿속 소음이겠지만 그래서 더 이 사변적이고 술에 거나하게 취한 듯한 소설에 빠르게 동기화된 것 같다. 작가인 보후밀 흐라발이나 작품의 주인공인 한타나 어찌 보면 때를 잘못 타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무엇하나 뜻대로 풀리는 일 하나 없고 탄압까지 받으면서도 살아있기에 글을 쓴 사람과 교양을 쌓은 사람. 주인공은 작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좋은 시대를 타고났음에도 게으름에 두 손과 두 발이 묶여 무엇 하나 이루어내지 못하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읽은 인연 덕분에 나는 보후밀 흐라발이 자주 갔다는 프라하의 술집 -우 즐라테호 티그라(황금호랑이)- 에도 발을 들였다. 작가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이런 분위기에서 옆 좌석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 소설에도 녹여보고, 또 그렇게 흥건하게 취해서 휘청거리며 집으로 돌아갔겠지. 돌아가는 발걸음에 그리 생각했을 것 같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친구는 이 시끄러운 술집에서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싶었지만 내가 눈에 띄게 신나하고 설레해서 나가자는 말을 참았다고 하더라.

    나머지는 책을 통하여 접하게 되었다. 슬라브어 문학을 전공한 김규진 교수의 <일생에 한번은 프라하를 만나라 : 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예술의 도시>라는 책 말이다. 읽으면서 흥미가 생기는 소설을 골랐는데 정말 한 보따리가 나오는 것이다. 야로슬라프 하셰크의 <병사 슈베이크> 등도 초반부를 읽기 시작했지만 역시 벼락치기에는 단편선이다. 그래서 집어든 것이 김규진 씨가 엮은 <체코 단편소설 걸작선>이다. 하셰크, 네루다, 차페크 등 체코 문학을 주름잡던 유명 작가의 글이 실려있다. 수능을 위해 읽었던 한국 근대 소설 느낌 그대로이다. 지역은 다르지만 이를 초월하는 시대정신 때문이었을까. 당시 소설은 중국, 일본, 영미권을 막론하고 글 짜임새나 철학이 유사하다. 배경이 프라하인 것을 제외하면 한국 소설을 읽는 듯했다. 그럼에도 여행지에서는 아 여기가 책에서 사람 냄새 물씬나게 묘사된 그 곳이구나 하는 정도의 감상은 생겼다.

    카프카의 소설은 백만년 전에 이미 <심판>, <성>, <변신>을 접한 적이 있어서 따로 읽지는 않았다. <변신>은 내가 지금껏 읽은 소설 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재미있게 봤던 책이다. 엄마는 프라하 성에 가고 나니 왜 카프카가 <성>을 그렇게 썼는지 이해가 간다고 얘기했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성>을 워낙 재미없어했던지라 카프카가 작품 활동을 하던 황금소로의 집에서도 큰 감흥은 없더라. 

    빌린 책 중에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도 있었다. 읽으려다가 문득 제목이 잘못 번역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더 적절해 보인다.. 두 차이를 모르겠다면 '착한 엄마의 아들'과 '엄마의 착한 아들'의 의미 차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것이 가벼움인지, 존재인지, 존재의 가벼움인지 구분이 안 가는 제목을 보며 제목조차 이 모양이라면 과연 내용은 어떨지 불안해졌다. 당시 피터 버크의 <지식의 사회사>를 보며 번역에 심한 내상을 입은 터였다. 다른 소리지만 <지식의 사회사> 번역자 소개 문구에 "몇 년 전부터는 번역의, 정확하게는 자기 번역의 한계 같은 것을 느끼며, 일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도 좋은 책을 들이밀면 마음은 설렌다."라고 써있었는데 타인의 설렘에 불안감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하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혹시나 다른 번역이 있음 읽어봐야지 하고 밀어재꼈다.

    헝가리 소설은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세계 문학의 강자였다. 그중 크러스너호르커 라슬로의 <사탄 탱고>,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헝가리 단편선 <가난한 사람들>을 읽었.., 아니 읽으려고 했으나 헝가리 단편선만 읽고 <사탄 탱고>와 <열정>은 앞에 조금 읽다 반납.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여행을 다녀와서도 읽어보려고 시도 중이다. 같이 간 친구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우연히 읽어봤는데 표지에 차용된 에곤 쉴레 그림이 내용을 너무 스포 한다고 하더라. 

    체코 역사도 굴곡진 역사라는 면에서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지만, 헝가리 역사의 굴곡은 이보다 더 복합적인 것 같다. 너무나도 여러 곳에서 치이고, 그 와중에 자기들끼리도 치고 치이는데 호방한 기운까지 있다. 이런 느낌이 문학에도 잘 드러난다. 헝가리 단편선 중에서는 모리츠 지그문드의 <가난한 사람들>, 데리 티보르의 <사랑>이 인상 깊었다. 특히 데리 티보르의 <사랑>은 차분한 묘사임에도 사람에 대한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이 차오르게 한다. 부다페스트에서 부다페스트의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기분이다. 특히 여행을 다녀와서 이 책을 읽으면 작품의 정경이 더 눈에 잘 그려지리라 본다. 

    이상 소설을 읽지 않는 자가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주절주절.

    하지만 단기간에 친해지기는 어려웠던 동유럽 문화권.

     

    우 즐라테호 티그라(U Zlateho Tygra) 술집에 있는 보후밀 흐라발 흉상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