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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1] 스토리북 토치, 동화 손전등通古今之變/斅學半 2021. 3. 19. 15:12
2019년 11월, 28개월 된 유나를 위해 "명작동화를 보여주는 스토리 라이트 동화 손전등"이라는 물건을 샀다. 밤마다 책 읽어달라며 잠도 안 자고 울부짖는다 하니 불을 끄고 그림을 천장에 비춰주면서 이야기해주면 어떨까 해서 구입한 거였다.
예상대로 유나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냥 손전등만으로도 재미있게 놀 나이인데 안에 스토리북이 담긴 칩이 있으니 말이다. 저녁이 되면 불을 끄고 침대에 같이 누워서 천장에 그림을 비춰주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시대 보정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잔인하기도 하고 요즘 시대에 안 맞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내용을 약간씩 바꿔가며 이야기해줬다. 내가 머리 굴리며 하는 얘기라 단 한 번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오지를 않는다.
"미운 아기 오리"는 내가 자꾸 미운 오리 새끼라고 했는데, 유나가 너무 찰지게 새끼라고 발음하는 것을 듣고 미운 아기 오리로 급수정했다. 내용에서도 밉다고 하지 않고, '넌 우리랑 다르게 생겼잖아' 라면서 구박했다. 오리는 오리대로 백조는 백조대로 자신의 생김새를 가지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다르게 생겼다고 배척하면 안 된다는 내용으로 약간 수정하였다. 유나는 아기오리가 구박받을 때는 많이 슬퍼했다. 중간중간 '그러면 안 돼!' '밥 나눠 먹어야지!' 라며 소리치다가 마지막에 백조가 되어 훨훨 날아갈 때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우와 고양이" 이야기는 나도 잘 모르는 이야기라 찾아봤다. 여우는 재주가 많다고 잘난 척 하지만, 결국 재주 하나 있는 고양이는 사냥개의 공격에 살아남고, 여우는 장고 끝에 악수, 아니 고민만 하다가 큰 코 다친다는 이야기이다.
"빨간 모자"는 소녀를 잡아먹으려는 못된 늑대(어른)의 이야기가 꺼림칙해서 이야기를 살짝 바꿨다. 할머니가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이야기도 할머니를 옷장 안에 가둔 것으로 바꿨다. 유나가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를 나르는 손녀로 각색했다. 그런데 결국 유나가 다른 책으로 이 이야기를 접하고 잡아먹었어! 이러더라. 나의 노력이 물거품.
"아기돼지 삼 형제"는 중간에 둘째가 나무로 만드는 집은 슬라이드조차 없는 만행을 저지른다. 아무래도 8장의 슬라이드 내에 이야기를 다 지어내려니 할 수 없겠지. 굴뚝으로 들어간 늑대가 뜨거운 말에 삶아지는 얘기는 잔인해서 아주 뜨거운 물에 목욕해야 하는 내용으로 바꿨다. 사실 어른이나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아기들은 별로 그런 식의 감각이 없다.
전작의 흥행을 등에 업고 2020년 4월에는 아래의 손전등을 샀다. 좀 더 거대한 버전이며 슬라이드용 전등뿐만 아니라 하늘에 별과 달을 쏴주는 전등도 가능하다. 기존에 산 칩과 호환 가능한데, 다만 돌리는 방향이 오른쪽 왼쪽이 다르다. 이쪽이 더 밝고 조작이 편해서 이야기를 해줄 때에는 이 전등을 썼다.
이야기는 아래와 같이 여덟 개의 칩이 있다. 피노키오 이야기는 너무 복잡해서 아예 재창조하는 수준이었고, 행복한 왕자는 슬픈 이야기인지라 해피엔딩으로 바꾸었다. 엄지공주나 신데렐라 이야기는 납치에 차별에 대혼란의 스토리라 친구를 만드는 이야기로 다 바꿔버렸다. "우주에 가고 싶어요"라는 이야기는 처음 본 이야기인데 유나가 꽤 좋아했다. 하늘을 만지려고 점프하다가 떼굴떼굴 산비탈을 굴러 계곡으로 빠지는 장면을 혼신을 다 해 연기하면 유나는 까르르 웃으면서 또 해달라고 했다.
이 전등 같은 경우는 이야기책도 있고, 성우가 녹음한 음성파일도 존재하는데, 유나는 내 육성으로 얘기 듣는 것을 더 좋아했다. 영어로 이야기해보려다가 실패하고 ㅋㅋㅋㅋ 매번 우리말로 최선을 다 해 얘기해줬다. 이야기 자체는 앞의 손전등 이야기들을 더 좋아했다.
굳이 여기 있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전등과 별 달 램프를 가지고도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방 안을 어둡게 해서 두 전등을 천장에 비추며 우주에서 충돌하는 별과 달 얘기도 하고, 춤추는 태양 놀이도 하고, 그림자놀이도 하고, 이불 안에 들어가서 캠프 놀이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다. 저녁만 되면 스토리 토치를 가져오는 통에 아직 밖이 어둡지 않아서 안 된다며 실랑이도 벌이고, 1시간씩 어둠 속에서 누워있어야 해서 내가 램프를 숨겨뒀지만, 이 꼬마는 기똥차게 물건을 잘 찾는다.
참, 이 램프를 켜고 얘기해주면 꼬마 눈이 더 말똥말똥 해진다. 이것으로도 잠을 제시간에 재우기는 틀린 것 같다. 아기를 재우는 최선의 방법은 낮시간에 전력질주 1km 시키는 것뿐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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