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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드] <어사소오작御赐小仵作> 잡설오덕기(五德記)/中 2022. 1. 3. 15:41
<산하령>은 디폴트로 반복 시청하면서 새로운 피를 주입하겠다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어사소오작>이다. 예전에 인트로만 보고 한 달 정도를 쉬다가 봤다니, 내용이 이해가 안 가서 어리둥절(복습 할 열의는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장면이 거의 없어서 진도도 쭉쭉 뺄 수 있었지만(은근 스킵도 하지 않았다), 지독하게 딴짓을 하면서 봐서 내용을 제대로 파악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게다가 머리 스타일도 다 비슷해서 안면인식장애 최고의 난관을 겪은 드라마. 특히 관료들이 나올 때마다 님은 뉘신데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시나요 하며 매번 낯설어했다. 거의 30편이 넘어가서야 소근유 스승인 설여성의 안면을 구분해 내는 기염을 토했다.
당나라가 배경이다. 만당 시기 득세한 환관의 손에 황제의 옹립과 폐위가 결정되면서 나라가 쇠락해가던 중 잠시 회광반조하였던 선종 시대의 이야기이다. 선종의 선황제인 당무종은 삼무일종의 법난으로 꼽히는 회창폐불 사건을 일으킨 인물이다(사실 이것말고는 무종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나름 실제 인물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정치사극이고 관복도 당대 복식 예제를 따랐건만 왜 이리도 명나라 느낌이 나지 하면서 수시로 시대 보정하면서 봤다. 저예산 세트에 전반적으로 칙칙한 화면 때깔이 당나라 고장극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랬나 보다.
주인공은 신인급 젊은 배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단 오작인 초초(소효동, 쑤시아오통), 삼법사 안군왕 소근유(왕자기, 왕쯔치), 대리사 소경 경익(양정동, 양팅동), 냉월(조요가, 짜오야오커) 이렇게 네 명이고 알아서 러브라인을 나눠가졌다(아주 미미해서 현미경으로 봐야하는 라인이지만). 그리고 안군왕의 형인 소장군 소근리(왕언흠, 왕옌신) 등도 꽤 중요하게 나온다. 이 중 초초, 소근유, 경익 역을 맡은 배우가 모두 북경전영학원 선후배 출신이다. 배우 캐스팅을 북경전영학원 출신에게 맡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간다. 소근리 역을 맡은 배우는 상해희극학원 출신이다. 소근유의 스승 설여성 역을 맡은 곽추성은 눈에 익는다 싶었는데 국가 1급 배우. 경익이 아버지인 경치 역을 맡은 허정생도 국가 1급 배우.
여주인 초초는 검주의 오작(검시관) 집안의 자손으로 오작이 되는 시험을 치르기 위하여 장안에 상경한다. 이곳에서 삼법사를 담당하는 안군왕 소근유를 만나 능력을 인정 받는다. 안군왕은 지략이 뛰어나고 공평무사한 완벽한 캐릭터로 초초와 안군왕, 경익, 냉월은 검주 지역 위조 화폐 문제를 조사하면서, 사라진 안군왕 부친의 비밀, 초초의 출생의 비밀, 환관 세력의 음모, 그리고 반역의 위협까지 모든 문제를 파훼하는 과정에 온갖 역경을 겪고, 사랑도 이뤄간다.
초초가 하는 오작이란 직업은 시체를 검사하는 검시관인데 드라마상 묘사에 따르면 거의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는 것 같다. 시체를 다루는 오작은 사람들이 멀리하여 마을 경사에도 참석할 수 없고, 오작이 만진 물건은 부정을 탄 것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그러고 보면 오작은 정말 극한직업이 맞을 것 같다. 오래되어 부패하거나 잔혹하게 훼손된 시체를 보고 만지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또한 부패하거나 감염된 시체를 만지는 경우라면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성이 컸을 것 같다. 옛날에 감염을 막을 수 있는 방식이 많지도 않았을 것이고, 손을 밥 먹듯이 씻지도 않았을테니 말이다. 드라마 상에도 냉월이나 소근리가 잘 씻지 않는 얘기가 언급될 정도이니 말이다.
초초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이 황족이거나 명문가문의 자손인데도 불구하고 초초는 아주 말을 쉽게 하고, 신분이 높은 이들도 초초를 멸시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한다. 약간 이런 식의 예의를 차리고 귀천을 나누는 장면을 귀찮게 삽입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생략했다. 게다가 초초가 여자의 몸으로 자신이 희망하는 직업을 가지려는 것에 대한 장벽도 없다. 황가의 자손들이 자유연애하고 혼인하려는 것에 대한 제약도 거의 없으며, 캐릭터 간 서로에 대한 존중이 요즘 느낌이다. 지금의 마인드셋과 스토리에 옛날 옷만 입혀놓은 꼴이랄까. 그래서 한창 보다가 내가 왜 복식이 딱히 예쁘지도 않고, 감정선이 섬세하지도 않고, 배우가 눈부시지도 않은 이 무늬만 고장극을 봐야 할까라는 자각이 뒤통수를 치고 가기도 했다. 이런 식의 과학수사 드라마라면 미국에 웰메이드가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
그 어지러움 속에서 그나마 이 드라마를 즐겁게 만든 요소라면 경익, 냉월, 소근리 캐릭터, 특히 경익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날라리같이 경공만 잘하고, 경박해 보이는 이 공자는 안군왕에게는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이고, 풍류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좋아하는 여인인 냉월에게는 부끄러움이 많은 일편단심이고, 소근유의 형인 소근리에게는 눈엣가시인 경씨 가문의 자제이다. 초초와 소근유가 약간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눈치를 안드로메다에 날린 듯한 언행을 할 때도 오직 그와 냉월만이 제정신을 차리고 시청자가 납득이 가는 행동을 한다. 그 와중에 연애사는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더니 남들의 관계성은 잘도 파악하면서 자기들 관계를 풀어나갈 방법은 도통 모르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경익은 관모가 굉장히 잘 어울린다. 이렇게 관모가 잘 어울리는 젊은 배우라니!
그런데 가끔 여자들끼리, 남자들끼리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대사나 행동을 한다. 초초를 지켜주겠다면서 시집 오라는 냉월이나, 저건 누가 봐도 대놓고 노렸네, 하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는 소근유-소근리, 소근리-경익, 소근유-경익의 행동이나 대사 말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이라도 없었으면 감정선이라고는 거의 없는 드라마가 될뻔했다. 이것을 좋다해야 할지.
소근리가 너무 연기를 못해서 웃음이 날 때가 있었지만 귀여우니 괜찮다. 소근유도 격한 장면을 찍을 때에는 어색할 때가 많은데 다행히 감정이 쉽게 격해지지 않는 캐릭터였다. 내가 <여의방비>에서 안왕 역을 맡은 성우(익범) 연기에 질려서 소근유 역은 어찌하나 지켜봤는데, 이 정도면 무난하게 잘했다.이 드라마는 대사도 가장 퓨전인데, 션머(什么)도 잘 안 쓰는 고장극만을 보다가 샤(啥)를 말끝마다 내뱉는 것도 또 처음 본다. 또한 캐릭터의 감정이 크게 동요할 때 카메라도 같이 흔드는데 나는 이게 약간 어지러웠다. 배우들 얼굴 좀 자세히 보고 싶은데 너무 흔들어대서 화가 난 적도 있었다. 또한 가끔 스토리를 만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영상 편집도 카툰 식으로 프레임을 줄 때가 있었다. 나름 젊은 층에게 어필하려는 시도였을 듯.
꽤 잘 만든 무늬만 고장극 과학수사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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