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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ulla dies sine linea_원효_积德行善?
    What am I doing? 2022. 6. 20. 16:03

    0. 원효 대사는 『보살계본지범요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옛날 현인이 그 아들을 가르치면서 “삼가 선을 행하지 말라.”라고 하니, 그 아들이 “그러면 악을 행할까요?”라고 대답했다. 이에 아버지가 “선도 행하지 않아야 하거늘 악을 행할까 보냐.”라고 말했다 한다.
    (古之大賢。誡其子云。愼莫爲善。其子對曰。當爲惡乎。親言善尙莫爲。況爲惡乎。)
    - 『보살계본지범요기菩薩戒本持犯要記』 (ABC, H0015 v1, p.582b01-b11)

     

    1.길모어 걸즈 1-5를 보면 로리의 생일파티를 주최하는 할머니 얘기가 나온다. 로리는 학교 친구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데, 할머니는 로리의 속사정은 상관하지 않고 학교 친구들 전체를 초대한다. 로리는 그것이 영 마뜩지 않아서 결국 할머니에게 대거리를 하고, 할머니는 돈 들이고 공들여 생일잔치를 해주니 로리가 고마운 줄 모른다며 역정이다. 그리고 그걸 보는 나는(그리고 시청자 대부분은) 화가 난다. 할머니에게.

    2, 외국에 사는 친구가 있는데 주말마다 골프를 치러 가는 낙에 산다고 한다. 그런데 한 중년의 한국인 여성이(쉽게 말하면 아줌마가) 자꾸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한다고 한다. 이 친구는 계속 거절하기 민망한 나머지 결국 이 여성을 피해 잠도 못 자고 새벽 타임에 나가고ㅋㅋㅋ. 누군가는 선남선녀를 소개해주겠다는 선의에서 시작된 것이겠지만, 실상 친구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오니 그것이 문제이다.

    3, 이런 것은 일상생활에서 늘상 일어나는 작고 비근한 예이다. 예전에 나는 선을 행하고자 한다면 업설에 의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즉, 선행을 하되 현명하라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왜냐면 업은 받는 상대방의 입장만 고려하기 때문이다. 비록 동기가 선할지라도 내 마음속 선악의 관념에 따라 행한 것이 상대에게는 폭력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원효는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간다. 아예 선한 일도 행하지 말라니. 어쩌면 속뜻은 본인이 행한 일이 선하다고 생각해도 선한 일을 했다고 생각지도 말라는 뜻도 되겠다. 중중무진 어찌 될지 모르는 세상에서 내가 선행이라고 철썩같이 믿으며 행한 행위가 어떻게 과오로 돌아올지 모를 일이 아닌가. 이제 필요한 것은 선행을 하고픈 마음을, 그리고 선행이라고 믿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혹여 누가 봐도 선행을 행해도 이렇게 말하면 된다. 그냥 나 기분 좋으려고 했다고. 절대 당신을 위한 선행이 아니었다고. 그러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다. 적어도 타자는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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