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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ulla dies sine linea_사소함 주의
    What am I doing? 2022. 5. 30. 11:22

    1. 알록달록

    패션을 글로 배운 한 친구가 내게 한 몸에 세 가지 이상의 색을 지니면 패션을 알지 못하는 이라 하였다. 이를 실천하기라도 하듯, 평소 모노톤만 챙겨 입어 흑백 TV가 구현하는 수준의 색으로 입고 다니는 이 몸 되시겠다. 그렇지만 요즘 옷과 신발도 다 떨어져서(헤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싶다) 여태까지 온전한 태를 갖추고 있는 의복을 착용하자니 저도 모르게 색이 좀 알록달록해졌다. 이를테면 연분홍색 스니커즈니 민트색 후드티니 하는 것들. 이 나이에, 이 정도 부를 가지고(옷을 살 돈은 있다는 얘기다), 이 정도로 헤진 의복을 입는 이도 나뿐이리라.

    이 날 아침에도 몸에 지닌 색깔이 너무 많아서 약간 개의하며 집 밖을 나서고 있었다 눈에 띄는 여섯 가지(그중에는 연분홍 스니커즈, 연두색 이어폰케이스, 주황색 에코백도 포함이다) 색을 몸에 지니고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가(何故至于斯)를 읊조리며 스트레스를 잔뜩 받던 차였다 

    2. 사전 투표

    알록달록한 색에 신경 쓰며, 한편으로는 이 휘황찬란한 주황색 에코백은 친구에게 선물로 줄 물건을 담았으니 치워버리면 그뿐이라 다행이라 여기며, 지하철 역으로 향하였다. 가는 길에 사전투표소가 있는데 나는 듯이 들어가는 사람을 보며 난 오늘 합정역에서 친구를 만나기 전에 투표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하늘하늘한 봄 옷을 입고 내 앞을 걷던 여자가 갑자기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처음에는 소리의 출처도 파악하지 못해 멍해있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지하철 역사에서 전단지를 나누며 인사하는 정O균을 보고 반가워하며 응원하는 소리였다. 나는 그 순간 이 사람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누구였더라 하며 잠시 멍하다가 전단지는 안 받고 그냥 맞절만 하였다. 혹시 코로나 시국에 지하철에서 안내 방송 많이 하던 그 총리인가 하고 생각하였는데 알고 보니 우리 동네 구청장. 그토록 환호를 받을 일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같이 정치에 관심이 하나도 없이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보다는 환호하는 게 훨씬 나을 듯싶다. 

    3. 달마가, 아니 내가 합정역에 간 이유

    물론 그 근처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내게는 5월 안에 매조지 해야 할 너무나도 중요한 과업이 하나 있었다. 그날 따라 컨디션이 바닥을 쳤다. 하루 종일 오한과 두통에 시달렸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에게 줘야 할 선물(상자가 좀 컸다)을 들고 나왔고, 오늘이 아니면 그 과업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합정역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녔으나 찾을 수 없었다. 인스타와 초록창 등에서 검색 해보았으나 더 자세한 위치는 찾을 수 없었다. 역사 구내 지도를 확인해 본 후 2호선으로 가면 안 되고 6호선 쪽으로 가야겠다고 대충 감을 잡았다. 이미 개찰구를 통과하여 나온지라 약간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기분을 느끼며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고 근처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쳤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몸이 그렇게 안 좋은데도 굳이 한강공원까지 산책을 했다. 헤어질 때, 친구가 굳이 2호선으로 데려다주겠다는 걸 안 된다고 난 이 개찰구로 바로 들어가겠으니 강호에서 다시 만나자며 헤어지고 다시 과업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veni, vidi, vici.

    얼마나 멀리에서 찍었는지...ㅋㅋㅋ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동물인지라, 굉장히 멀리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트로트 가수 같은 우리 철한이. ㅋㅋㅋㅋ. 여기에 포스팅하는 것도 부끄럽네 ㅋㅋㅋㅋ

    어이하여 합정역에 그를 영접하러 가지 않느냐며 매번 압박하던 친구에게 승전보를 알리고 귀가. 귀찮음이 많은 자가 5월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끝내 해냈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