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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드] 《일념관산(一念关山)》 줄거리, 리뷰
    오덕기(五德記)/中 2024. 9. 3. 15:59

    유시시(류싀싀, 류시시 whatever)를 오랜만에 본다. 이 사람이 나온 작품은 <소년양가장>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보보경심>에 나왔다고. <보보경심>을 보기는 했는데, 그다지 재미가 없어서 휙휙 남기면서 봤더니 여주가 누구인지조차 잊었었다. 
    유우녕(리우위닝, 류우녕 whatever)은 <장가행>에서 보고 마음에 들었고, 그 이후에도 계속 호감이었던 가수/배우인지라 고장극일 경우 챙겨보려고 노력 중인데, <설영웅수시영웅>은 몇 편 보다 말았고, <안락전>은 곧 볼 생각이다(사실 1편만 보다 말았다). 어찌 되었건 첫 주연을 맡은 <일념관산>은 제대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줄거리 설명하겠다.

    여주인공인 임여의는 안나라의 정보기관인 주의위 소속으로 오나라의 군량지도를 훔치기 위해 무희가 되어 생일축하연에 잠입한다. 그러나 함께하던 동료가 내부의 배신으로 살해되고, 자신도 그 시신을 수습하다가 독을 당해 무공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나라 정보기관인 육도당의 전 당주인 녕원주와 만나게 된다.

    당시 오나라 황제는 안나라와의 전쟁 중에 포로로 잡혔고, 안나라는 그의 몸값으로 황금 10만냥을 요구한 상태였다. 오나라 섭정을 하던 황제의 동생인 단양왕은 그다지 황제가 돌아오기를 원하지 않지만, 도의상 어쩔 수 없이 이에 응하고, 황자를 사절단으로 보내라는 요구에 예성공주를 남장시키고 왕에 봉하여 보낸다. 녕원주는 재상의 압박, 육도당 형제의 명예, 동생처럼 여겼던 예성공주의 안위를 위해 이 사절단을 이끌게 되고, 이유도 모르게 끌렸던 임여의를 예성공주의 스승으로 초빙한다.

    가는 길은 고난이다. 임여의는 주의위 내부의 배신자를 색출하여 동료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단양왕은 이 사절단의 앞길을 막으며 기습하고, 오나라에서는 그나마 평탄했다면 국경을 넘어간 이후에는 더한 공격과 푸대접이 함께한다. 재상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독약을 들이켰던 녕원주는, 열흘마다 해독약을 먹지 못하면 발작을 한다. 임여의의 신분을 의심하던 육도당 사람들은 녕원주가 없는 틈을 타 임여의를 공격하여 거의 죽음에 몰아넣는다. 이런 대혼란 속에서 처음에는 아둔하고 가지고 있는 기능이라곤 눈물바다 밖에 없는 민폐 캐릭터 공주가 크게 성장한다. 녕원주와 임여의 사이에도 어느덧 사랑이 커져간다. 

    처음, 임여의는 스승으로 여기며 믿고 따랐던 소절황후의 유지에 따라 자신의 아이를 갖기를 원하고, 그 아이의 생물학적 아빠로 녕원주를 선택하고 녕원주는 이를 격렬하게 거부한다. 여자가 자자고 덤비고, 남자가 몸을 무척 사리는 것이 초반의 웃음 포인트였다면, 어느새 임여의에게 마음을 빼앗긴 녕원주가 꽁냥 거리면서 질투하고 찌질하게 굴다가 육도당 형제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중반의 웃음 포인트이다.

    안나라의 성도, 즉 안도에 도착한 임여의는 주의위, 그리고 그 너머의 황제와 맞서면서 착실히 소절황후의 원수를 갚는다. 그리고 이때 임여의가 황제를 강박하면서 원했던 것은 주의위에 묶여 있던 주의중과 백작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것,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 나라의 온갖 궂은일은 다 하면서도 이름 한 글자 남길 수 없었던 자신들의 업적과 공적을 제대로 역사서에 기록하라는 것이었다. 

    사건은 그 이후에도 지속되지만, 이 부분이 드라마나 함의면에서 꽤 큰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해 '시민이면서도 시민이 아닌 자,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자'로 정의 내렸는데 바로 주의위의 여성들이 그랬던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유를 저당 잡힌 채 착취당하고 업적은 철저히 은폐되어야 했던, 즉 자신이 한 행동/노동으로부터 소외당한 인간이 바로 주의위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임여의는 구조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이 주의위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노동의 결과와 그들을 일치시키기 위해 황제를 겁박한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자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중드가 그동안 국가에 충성스럽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들만 그렸다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변이점은 애민애족은 어쩔 수 없이 대충이라도 끌고 가지만, 충성스러움을 많이 희석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에 대한 충성을 제거할 수는 없기에 황제에 대한 충성으로 대상을 변형시키긴 했지만 말이다. '무턱대고 황제라고 충성할 수는 없다', '우리도 사람은 볼 줄 안다', '그러니 황제가 능력이 없으면 바꿔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나온다. 예전에는 황제가 혼군이거나 암군이어도 충성모드였다면, 이 드라마는 짤 없다. 중드가 저래도 돼? 이러면서 봤다. 광총이 저런 것은 괜찮은 건가 궁금했다.

    소설 원작이 있나 찾아봤는데, 시나리오 창작품이더라. 작가는 알고보니 <차시천하>의 초고를 쓴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 작가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능력자 남녀가 힘을 합쳐 천하를 바꾸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게다가 이 둘의 사랑은 일그러지는 경우가 없이 어떠한 외부의 상황에도 굳건하다. 


    캐릭터 살펴보겠다.

    임여의: 유시시는 예쁘다(설명 끝). 연기도 어찌나 잘하시고 자세는 얼마나 바르신지. 목소리는 성우를 썼다. 임여의는 최강 살수 출신으로 원래 혼자서 활동하다가 오국사절단과 함께 하면서 팀프로젝트의 재미를 느낀다. 성정이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이 매우 칼 같다. 사회성이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능력이 저러면 감지덕지이다. 검술과 암기에 독에도 밝고, 지식과 지혜는 풍부하며, 전략과 용병에도 능통하다. 거기에 춤도 잘 춘다. 내가 사실 중드에서 춤추는 장면만 나오면 스킵하는 편인데, 유시시 장면은 꽤 괜찮길래 냅뒀다. 알고보니 발레리나 출신. 어쩐지 팡쉐 동작 같은 것이 있던데 그걸 균형을 잡고 있더라.

    중국사이트에서 보니 임여의가 북반의 공주라는 설이 있던데 이것은 드라마에서 확인이 어려웠다. 내가 안 본 사이에 설명한 것일까.


    녕원주: 우리의 유우녕이 이렇게 연기를 잘합니다. 게다가 본인 목소리. 유우녕은 대단하다. 그 바쁜 와중에도 계속 본인 목소리로 녹음을 하니 말이다. 처음 유우녕이 주연을 맡았다길래(그것도 상대가 무려 유시시) 괜찮을까 걱정했었다. 외모가 중국에서 주연급으로 쓰는 배우 얼굴처럼 엄청 부리부리한 배우들이나(초전, 공준, 라운희, 양양 류), 약간 중소급 드라마 배우들(어사소오작 등)의 얼굴과는 또 다른 형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녕원주 충분히 멋있고, 일단 키 크고, 손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왼쪽 아랫눈꺼풀 점 크고, 무술 장면에서 몸 잘 쓰고 대견하다!
    녕원주 이야기를 하자면, 무공이면 무공, 책략이면 책략, 의리면 의리, 게다가 임여의에 대한 배려와 애정의 폭이 임여의가 스스로를 귀히 여기는 것보다 더 크다. 이 남자의 크나 큰 사랑에 감-동. 이 분은 파이어 족을 꿈꾼다.

    사족이지만, 녕원주는 한글 맞춤법에 따르면 두음법칙에 따라 '영'씨로 표기하는 게 맞을 듯. 어차피 중드 자막에서는 개나 줘 버린 표준안이지만. 거의 매번 지적하고 넘어갔던 얘기니 다시 한번 얘기한다. 이럴 거면 녀성, 량반, 륙도당 하던가. 왜 임여의는 임여의래 림여의 하지(여기까지)

    양영: 처음에는 어리바리한 냉대받는 예성 공주. 예술가의 성대...공주. 그놈의 얼어 죽을 사랑! 을 위해 큰 일에 뛰어든 민폐캐릭터의 전형. 그런데 임여의 손에서 독하게 배운다. 양영이 줄을 잘 선다. 사실 임여의도 엄청 무서운 사람인데, 속마음은 따뜻하다는 것을 양영은 간파한다.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눈칫밥을 먹고 자라선지 사람 보는 눈이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성장한다. 이 드라마는 어찌 보면 이 예술가의 성... 예성 공주 양영의 성장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녀의 성장이 중간부를 하드캐리한다. 이 사람의 근기가 어찌나 훌륭한지 반성도 잘하고, 깨달음도 크며, 일취월장하고 자신이 헤쳐갈 바를 깨우쳐서 실로 놀라운 발전을 한다. 어찌 보면 임여의의 맞춤형 가르침이 크다 할 수 있겠지만 어찌 보면 임여의는 자기가 가르치고 싶은대로 성질 안 죽이고 가르친 것 같기도 하다. 난 양영을 맡은 배우의 외모도 마음에 들었지만 연기도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 남장을 했을 때의 목소리 톤도 잘 잡았고, 울 때 나도 모르게 따라 울 정도. 화장에 따라 얼굴이 확확 바뀌는 타입.


    이동관: 어찌 보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안국 공주와 오국 악공 사이에서 태어나 남첩의 소생이라며 비웃음 당하지만 불굴의 의지와 나름의 뛰어난 머리를 바탕으로 큰 공을 세운다. 그런데 무공은 녕원주 앞에서 픽픽. 실망이 크다. 그를 가르친 스승인 임여의에 대해 뭔가 삐뚤어진 집착을 품고 있는데, 신조협려 버전으로 말하면 얘가 양과고 임여의가 소용녀다. 나는 류시시를 볼 때마다 소용녀 재질이라고 느꼈는데, 소용녀를 직접 맡지는 않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이 역을 아주 찰떡같이 소화한다. 워낙 임여의가 철벽이고 녕원주와의 꽁냥꽁냥이 도를 지나쳐서(차시천하도 그렇고 이 드라마의 작가는 남주와 여주의 러브라인에 그 어떤 장애물도 허용치 않는 것 같다) 이동관 혼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 몇 번 하다가 제 풀에 넘어간다. 이동관 캐릭터나 그 역을 맡은 배우가 조금 더 매력이 있었으면 극의 긴장감을 더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확실치 않다.

    우십삼: 이 드라마 캐스팅 중 가장 날 놀라게 한 것은 우십삼 역을 맡은 방일륜이다. 어느 정도 주연급은 되지 않나 생각했는데, 꽤나 잘생긴 얼굴로 온갖 느끼한 연기를 다 한다. 이 드라마를 함께 본 친구는 계속 현빈을 닮았다 그러는데 난 동의를 못하겠고, 방일륜과 공준이 비슷하지 않냐고 하니 친구는 동의하지 않는다.
    무언가 사연은 가장 많은 듯한 풍류남 역이다. 하얀 옷을 표표히 흩날리며 온갖 멋은 다 부리고, 주무기도 특이하게 쇠뇌이다. 무공도 박력 있고, 작가가 애정을 몰빵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우십삼이 임여의를 '누이'라고 부른다고 번역되어 있는데 제대로 번역하면 '이쁜이' 정도의 느끼함. 느끼함에 소름이 끼친 적이 몇 번 있다.


    뭔가 오지환을 닮은 전소는 매번 충직한 척하다가 뒤통수를 팍팍 치고, <차시천하>에서 날 풍장풍장하며 울게 했던 황제는 역시 저 양씨 집안은 뭐가 문제인 거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초월 현주는 매력이 많이 떨어지고, 금미냥은 매력 넘친다. 원록은 공주와의 러브라인이 그려지는데, 원록이 공주를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것이 쌍방이었다니 하면서 흠칫 놀라게 하고, 은근 등회가 입체적이고 멋있는 캐릭터.

    무술 장면도 잘 뽑았고, 임여의가 엄청나게 빠른 검법을 보인다면 녕원주와 우십삼은 묵직한 파워를 느끼게 해 준다. 게다가 이렇게 각혈이 많은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가 싶은데, 피를 팍팍 잘도 토해줘서 뭔가 소화되는 기분까지. 내가 편두통을 앓다가 구토 한번 하면 기분이 말끔해지는 편이라 각혈에서 뭔가 공감했다.

    전체적으로 주인공들을 제외하고는 일편단심이란 없고, 쉽게 마음 변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누군가가 죽을 때 회상씬과 노래가 없으면 안 죽은 것이라는 중국드라마의 문법도 착실히 따른다.

    사랑 이야기로 치자면, 각자 혼자 살아온 지 오래된 남녀가 그간의 세월동안 지켜온 것들을 포기하기 힘들어하다가 결국 상대를 받아들이는 그런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30대 사랑 이야기.
    직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어두운 곳에서 암약하도록 강요받았던 스파이나 노예들의 자기 이름 획득기.

    마지막으로 <일념관산>이라는 제목은 무슨 뜻일까 궁금하지 않겠는가.
    중국 사이트에서도 제목 뜻이 뭐냐고 토론하는 것을 봤는데, 결론이 영 내 마음에 안 차서 내 뜻대로 정의를 내려보겠다. 

    제목 <일념관산>은 위진남북조 시절의 문인인 심약(沈约)이라는 사람이 지은 《각동서문행(却东西门行)》의 거의 마지막 구절 '일념기관산' 따온 말일 것이다. <각동서문행>은 조조가 지은 시로만 알고 있었는데, 심약도 나 몰래 이런 시를 지었더라. 

    《却东西门行》 南北朝   沈约
    驱马城西阿。
    遥眺想京阙。
    望极烟原尽。
    地远山河没。
    摇装非短晨。
    还歌岂明发。
    修服怅边覊。
    瞻途眇乡谒。
    驰盖转徂龙。
    回星引奔月。
    乐去哀镜满。
    悲来壮心歇。
    岁华委徂貌。
    年霜移暮发。
    辰物久侵晏。
    征思坐沦越。
    清氛掩行梦。
    忧原荡瀛渤。
    一念关山
    千里顾丘窟。

    맨 마지막 두 줄을 해석하면 '한 번의 생각으로 관산을 떠올리고, 천 리를 돌아보며 고향을 생각하네' 이다. 관산은 보통 국경에 있는 산을 가리킨다. 이 드라마에서도 관산을 넘어 북반이 어쩌고 저쩌고 얘기를 하긴 한다. 또한, 어려운 난관을 뜻하는 경우도 있고, 고향을 뜻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고향쪽에 제일 가깝지 않나 싶다. 이 시에서는 전체적으로 먼 길을 떠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여행자의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고된 여정 속 무엇인가를 그리는..., 역시나 오디세이의 정서랄까.

    그리고 그들은 과연 꿈에도 그리워하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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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