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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십육국황제즉위관련사료 번역學而時習之不亦悅乎/문사철 2009. 3. 27. 15:36
五胡十六國時期 皇帝卽位關聯史料1
한(漢:劉氏․匈奴)
304-10 고조, 광문제(高祖, 光文帝: 劉淵)
․劉淵이 漢王에 오름(晉書卷一百一 載記第一 劉元海 2649)
永興元秊, 元海乃爲壇于南郊1), 僭卽漢王位, 下令曰 :
永興 元年에, 元海(劉淵)는 이에 남교에 단을 만들고, 참람되게도 漢王에 즉위하여, 다음과 같이 영을 내렸다.
「일찌기 우리 太祖高皇帝(한고조)는 빼어난 무용으로써 시대에 응하여, 대업을 크게 열었다.
太宗孝文皇帝(한문제)는 대를 이어 자신의 덕을 밝힘으로써, 漢나라의 道를 태평하게 하였다.
世宗孝武皇帝拓土攘夷8), 地過唐日.
世宗孝武皇帝(한무제)는 땅을 개간하고 夷狄을 지배하니, 영토가 요임금 치세시보다 넓었다.
中宗孝宣皇帝(한선제)는 널리 현인을 구하니, 많은 인재가 조정에 가득 찼다.
是我祖宗12)道邁三王, 功高五帝, 故卜年13)倍於夏商, 卜世14)過於姬氏.
이는 우리 훌륭한 선조들의 道가 三王을 뛰어넘고, 功이 五帝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의 수명이 夏나라와 商나라에 비하여 몇 배나 길고, 대통을 이은 자의 수가 주나라보다 많았던 것이다.
而元成多僻15), 哀平短祚16), 賊臣王莽, 滔天17)簒逆.
그러나 원제와 성제는 편벽됨이 크고, 애제와 평제는 재위 기간이 짧으니, 逆臣 왕망이 찬탈하는 크나큰 죄를 지었다.
我世祖光武皇帝誕資18)聖武19), 恢復鴻基20), 祀漢配天21), 不失舊物22), 俾三光23)晦而復明, 神器24)幽而復顯.
우리 世祖光武皇帝(광무제)는 태어날 때부터 현명하고 용맹하였기에 大業을 회복하였으며, 하늘과 조상에게 제사드려 선대의 법통을 잃지 않으니, (이는) 三光이 어둠에서 다시 빛을 찾은 것이고, 사라졌던 神器가 다시금 드러난 것이다.
顯宗孝明皇帝、肅宗孝章皇帝累葉重暉25), 炎光再闡.
顯宗孝明皇帝(한명제)와 肅宗孝章皇帝(한장제)가 뒤를 이어 거듭 빛나게 하니, 불꽃이 다시금 환하게 드러났다.
自和安已後, 皇綱26)漸頹, 天步艱難27), 國統頻絶.
(그러나) 화제와 안제이후부터, 皇綱이 기울고, 천의 흐름이 어렵고 어지러워지니, 국통마저 빈번히 끊겼다.
黃巾海沸於九州, 群閹毒流28)於四海, 董卓因之肆其猖勃, 曹操父子凶逆29)相尋.
(이에) 황건적이 천하에 들끓고, 환관 무리의 병폐는 사해에 미치니 동탁은 이를 빌미로 방자하게도 미친 듯이 날뛰고, 조조 부자의 패악이 끊이지 않았다.
故孝愍委棄30)萬國, 昭烈播越31)岷蜀, 冀否終有泰32), 旋軫33)舊京34).
그러므로 孝愍帝(漢獻帝)는 온나라를 버려둔 채 돌보지 않았으며, 소열제(유비)는 岷蜀으로 유랑하여, (오직) 어려움이 다하면 형통함이 있기를 바라면서 수레를 돌려 옛 수도로 돌아갔다.
何圖天未悔禍, 後帝窘辱35). 自社稷淪喪36), 宗廟之不血食37)四十年于茲矣.
어찌하여 하늘은 재앙을 내린 것을 뉘우치지 않고 後帝(유선)가 심한 고통과 모욕을 당하게 하는가. 나라는 망하여 없어지고, 宗廟에 희생을 올리는 제사를 지내지 못한지가 40년이 지났다.
今天誘其衷38), 悔禍皇漢, 使司馬氏父子兄弟迭相殘滅.
이제 하늘이 그 정성스러움에 마음이 움직이니, 漢나라 황실에 재앙을 내린 것을 후회하여, 사마씨 부자와 형제들이 번갈아가며 서로 해치고 죽게하였다.
黎庶塗炭, 靡所控告39).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지만 이를 호소할 만한 곳이 없었다.
孤40)今猥爲群公所推, 紹修三祖之業.
오늘 나는 외람되게도 郡公들의 추대를 받아, 三祖의 대업을 계승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나약하고 우매하여, 심히 두려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但以大恥未雪43), 社稷無主, 銜膽44)栖冰45), 勉從群議.」
다만 아직 치욕을 씻지 못하였고, 나라에는 주인이 없기에, 각고면려하여 여러분의 뜻을 좇는 데에 힘쓸 것이다.」
乃赦其境內, 秊號元熙, 追尊劉禪爲孝懷皇帝, 立漢高祖以下三祖五宗46)神主而祭之.
이에 나라 안에 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元熙라 하였으며, 劉禪을 孝懷皇帝라 추존하고, 漢高祖 이하 三祖와 五宗의 신주를 세우고 그것에 제사지냈다.
五胡十六國時期 皇帝卽位關聯史料2
한(漢:劉氏․匈奴)
304-10 고조, 광문제(高祖, 光文帝: 劉淵)
․劉淵이 제위에 오름(晉書卷一百一 載記第一 劉元海 2651)
永嘉二年, 元海僭卽皇帝位, 大赦境內, 改元永鳳. 以其大將軍劉和爲大司馬, 封梁王, 尙書令劉歡樂爲大司徒, 封陳留王, 御史大夫呼延翼爲大司空, 封雁門郡公, 宗室以親疏爲等, 悉封郡縣王, 異姓以勳謀爲差, 皆封郡縣公侯.
永嘉2년에, 劉淵이 참람되게도 황제에 즉위하여 나라 안에 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永鳳이라 하였다.…
310-18 열종, 소무제(烈宗, 昭武帝: 劉總)
․劉總이 형을 죽이고 황제가 됨(晉書卷一百二 載記第二 劉聰 2658)
旣殺其兄和, 群臣勸卽尊位. 聰初讓其弟北海王乂, 乂與公卿泣涕固請, 聰久而許之, 曰 : 「乂及群公正以四海未定, 禍難尙殷, 貪孤年長故耳. 此國家之事, 孤敢不祗從47). 今便欲遠遵魯隱48), 待乂年長, 復子明辟49)50).」 於是以永嘉四年僭卽皇帝位, 大赦境內, 改元光興. 尊元海妻單氏曰皇太后, 其母張氏爲帝太后, 乂爲皇太弟, 領大單于、大司徒, 立其妻呼延氏爲皇后, 封其子粲爲河內王, 署使侍節、撫軍大將軍、都督中外諸軍事, 易河間王, 翼彭城王, 悝高平王.51)
이미 그의 형인 和를 죽였기에 여러 신하들은 황위에 오를 것을 권하였다. 總은 처음에는 그의 아우인 北海王乂에게 양보하고자 하였으나 乂와 公卿들이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청하였기에 總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것을 허락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乂와 群公들이 천하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음을 바로잡고자 하나, 재난이 오히려 크니, 나를 찾은 것은 나이가 많기 때문일 뿐이오. 이는 나라의 일이기에, 나는 감히 삼가하여 따르지 못하였소.(나는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소.) 이제 멀리 魯隱公을 좇고자 하니, 乂를 연장으로 대우하여, 그에게 되돌려 주어 훌륭한 임금이 되도록 할 것이오.」 이에 永嘉 4년에 참람되게 황위에 즉위하고, 나라 안에 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光興이라 하였다.…
318 은제(隱帝: 劉粲)
․劉粲이 즉위함(晉書卷一百二 載記第二 劉粲 2678)
旣嗣僞位, 尊聰后靳氏爲皇太后, 樊氏號弘道皇后, 宣氏號弘德皇后, 王氏號弘孝皇后. 靳等年皆未滿二十, 並國色也, 粲晨夜烝淫於內, 志不在哀. 立其妻靳氏爲皇后, 子元公爲太子, 大赦境內, 改元漢昌. 雨血于平陽.
전조(前趙:劉氏․匈奴)
318-28 요(劉曜)
․劉曜가 황제에 오르고, 靳準을 공격함(晉書卷一百三 載記第三 劉曜 2684)
元海世頻歷顯職, 後拜相國、都督中外諸軍事, 鎭長安. 靳準之難, 自長安赴之. 至于赤壁, 太保呼延晏等自平陽奔之, 與太傅朱紀、太尉范隆等上尊號. 曜以太興元年僭卽皇帝位, 大赦境內, 惟準一門不在赦例, 改元光初. 以朱紀領司徒, 呼延晏領司空, 范隆以下悉復本位. 以朱紀領司徒, 呼延晏領司空, 范隆以下悉復本位. 使征北劉雅、鎭北劉策次于汾陰, 與石勒爲掎角之勢.
․劉曜가 국호를 趙라 함(資治通鑑 권91, 太興2년)
汉主曜立宗庙、社稷、南北郊于长安, 诏曰 :
汉主인 劉曜가 장안에 종묘, 사직, 南郊, 北郊를 세우고 조칙을 내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吾之先. 兴于北方. 光文立汉宗庙以从民望.
우리의 조상은 북방에서 일어났다. 光文帝(유연)가 한의 종묘를 세움으로써 백성들의 바램을 따르고자 했다.
今宜改国号, 以单于为祖. 亟議以聞52)!」
이제는 마땅히 국호를 고치고, 单于를 祖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의견은 속히 상주하도록 하라!」
․劉曜가 靳準일가를 죽이고 국호를 趙로 바꿈(晉書卷一百三 載記第三 劉曜 2684-2685)
明率平陽士女萬五千歸于曜, 曜命誅明, 靳氏男女無少長皆殺之. 使劉雅迎母胡氏喪于平陽, 還葬粟邑, 墓號陽陵, 僞諡宣明皇太后. 僭尊高祖父亮爲景皇帝, 曾祖父廣爲獻皇帝, 祖防懿皇帝, 考曰宣成皇帝. 徙都長安, 起光世殿於前, 紫光殿於後. 立其妻羊氏爲皇后, 子熙爲皇太子, 封子襲爲長樂王, 闡太原王, 沖淮南王, 敞齊王, 高魯王, 徽楚王, 徵諸宗室皆進封郡王. ⌠繕53)宗廟、社稷、南北郊. 以水承晉金行, 國號曰趙. 牲牡尙黑, 旗幟54)尙玄, 冒頓配天, 元海配上帝, 大赦境內殊死已下.⌡
…宗廟、社稷、南郊와 北郊를 수리하였다. 水가 晉나라의 金을 잇기에, 국호를 趙라 하였다. 숫소를 희생하여 黑을 받들고, 旗幟는 玄을 받들었으며, 冒頓單于를 天과 함께 제사지내고, 유연을 上帝와 함께 제사지냈다. 나라 안에 사형수 이하의 죄를 사면하였다.
후조(後趙, 石氏․羯)
319-33 고조, 명제(高祖, 明帝: 石勒)
․尊號를 쓸 것을 권하나 石勒이 거절함(晉書卷一百五 載記第五 石勒下 2729-2730)
石季龍與張敬、張賓及諸將佐百餘人勸勒稱尊號, 勒下書曰 :
石虎와 張敬, 張賓 및 여러 장군 등 백여 명이 석륵에게 尊號를 칭할 것을 권하니 석륵이 下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孤猥以寡德, 忝55)荷崇寵56), 夙夜57)戰惶, 如臨深薄, 豈可仮尊竊號, 取譏58)四方!
나는 진실로 덕이 부족하기에, 분에 넘치게도 존숭과 괴임을 받는 자리에 오른다니 종일 두려워 마치 深淵薄氷에 임한 듯하도다. 어찌 외람되게도 거짓으로 존호를 훔쳐 천하의 원망을 받을 수 있겠는가!
昔周文以三分之重, 猶服事殷朝; 小白居一匡59)之盛, 而尊崇周室.
일찍이 주나라 문왕은 (천하의 2/3을 얻고도) 천하의 1/3을 중히 여겨, 오히려 殷나라 왕조에 복종하여 섬겼으며, 제환공은 어지러운 천하를 바로잡아 다스려 흥성하였으나, 周나라 왕실을 존숭하였다.
況國家道隆60)殷周, 孤德卑二伯61)哉! 其亟止斯議, 勿復紛紜62).
나라의 도의가 융성하였던 殷나라와 周나라와 비하건대, 나의 덕은 그 두 사람보다 낮도다! 이 논의를 속히 그치고, 되풀이하여 어지럽히지 말라.
自今敢言, 刑茲無赦!」 乃止.
이제부터 감히 이를 언급하면 벌을 내리고 용서하지 않겠노라!」
․石勒이 稱王함(晉書卷一百五 載記第五 石勒下 2735-2736)
⌠太興二年, 勒僞稱趙王, 赦殊死已下, 均百姓田租之半, 賜孝悌力田死義之孤帛各有差, 孤老鰥寡穀人三石, 大酺63)七日. 依春秋列國、漢初侯王每世稱元, 改稱趙王元年. 始建社稷, 立宗廟, 營東西宮.⌡ 署從事中郞裴憲、參軍傅暢、杜嘏並領經學祭酒, 參軍續咸、庾景爲律學祭酒, 任播、崔濬爲史學祭酒. 中壘支雄、遊擊王陽並領門臣祭酒, 專明胡人辭訟, 以張離、張良、劉群、劉謨等爲門生主書, 司典胡人出內, 重其禁法, 不得侮易衣冠華族. 號胡爲國人. 遣使循行州郡, 勸課農桑. 加張賓大執法, 專總朝政, 位冠僚首. 署石季龍爲單于元輔、都督禁衛諸軍事, 署前將軍李寒領司兵勳, 敎國子擊刺戰射之法. 命記室佐明楷、程機撰上黨國記, 中大夫傅彪、賈蒲、江軌撰大將軍起居注, 參軍石泰、石同、石謙、孔隆撰大單于志. 自是朝會常以天子禮樂饗其群下, 威儀冠冕從容可觀矣.
太興 2년, 石勒은 趙王이라 거짓으로 칭하고, 사형수 이하를 사면하였다. 또한, 백성의 田租를 두루 반으로 하였으며, 효성스러운 사람, 농사에 힘쓴 사람, 정의롭게 죽은 사람에게 각각 차이를 두어서 특별히 비단을 사여했으며, 고아, 노인, 홀아비, 홀어미에게 곡식을 三石씩 내렸으며, 7일 동안 백성에게 술과 음식을 크게 내렸다. 春秋의 열국과, 漢나라 초에 王侯가 각 대마다 연호를 칭했던 것에 의거하여, 趙王원년이라 연호를 고쳤다. 사직을 건립하고, 종묘를 세웠으며, 東宮과 西宮을 지었다.…
群臣議請論功, 勒曰 :
군신들이 論功할 것을 청하자 석륵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自孤起軍, 十六年于茲矣.
내가 기병한지도 60년이 넘었다.
文武將士從孤征伐者, 莫不蒙犯矢石64), 備嘗艱阻65), 其在葛陂66)之役, 厥功尤著, 宜爲賞之先也.
文武將士가 나를 좇아 정벌함에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은 자가 없으며, 온갖 고생을 맛보지 않은 것이 없다. 葛陂에서의 노역은 그 공이 특히 두드러진다. 마땅히 상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若身見存, 爵封輕重隨功位67)爲差, 死事之孤, 賞加一等, 庶足以慰答68)存亡, 申孤之心也.」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관작과 영지의 輕重은 공훈에 따라 차이를 둘 것이며, 죽음으로 섬긴 사람의 자식에게는, 한 등급을 더하여 상을 내려, 그 존망을 충분히 위로하고 보답함으로써 내 마음을 표하고자 한다.
․稱帝를 거절하고 天王이라 칭함(晉書卷一百五 載記第五 石勒下 2746)
勒群臣議以勒功業旣隆, 祥符並萃, 宜時革徽號以答乾坤之望, 於是石季龍等奉皇帝璽綬, 上尊號于勒, 勒弗許. 群臣固請, 勒乃以咸和五年僭號趙天王, 行皇帝事. 尊其祖邪曰宣王, 父周曰元王. 立其妻劉氏爲王后, 世子弘爲太子. 署其子宏爲持節、散騎常侍、都督中外諸軍事、驃騎大將軍、大單于, 封秦王; 左衛將軍斌太原王; 小子恢爲輔國將軍、南陽王; 中山公季龍爲太尉、守尙書令、中山王; 石生河東王; 石堪彭城王; 以季龍子邃爲冀州刺史, 封齊王, 加散騎常侍、武衛將軍; 宣左將軍; 挺侍中、梁王. 署左長史郭敖爲尙書左僕射, 右長史程遐爲右僕射、領吏部尙書, 左司馬蘷安、右司馬郭殷、從事中郞李鳳、前郞中令裴憲爲尙書, 署參軍事徐光爲中書令、領袐書監. 論功封爵, 開國郡公文武二十一人, 侯二十四人, 縣公二十六人, 侯二十二人, 其餘文武各有差. ⌠侍中任播等參議, 以趙承金爲水德, 旗幟尙玄, 牲牡尙白, 子社丑臘69), 勒從之.⌡
侍中 任播 등이 주청하기를 趙나라가 金을 계승하여 水德을 삼기에, 旗幟는 玄을 숭상하고, 숫소를 희생하여 白을 숭상하며, 子社丑臘라 하니 석륵이 그것을 따랐다.
勒下書曰 :
석륵이 下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自今有疑難大事, 八坐70)及委丞郞71)齎詣東堂72), 詮詳平73)決74).
「지금부터 해결하기 어려운 큰 문제는, 八座가 丞郞에 맡겨 東堂에 보내어 상세하고 주도면밀하게 결정하도록 하라.
其有軍國要務須啓, 有令僕尙書隨局入陳, 勿避寒暑昏夜也.」
전쟁과 나라에 긴요한 일이 있어 도움이 필요하다면, 令, 僕, 尙書가 상황에 따라 조정에 들기를 추위와 더위, 밤을 가리지 말라.」
․石勒이 황제에 오름(晉書卷一百五 載記第五 石勒下 2746)
⌠勒以祖約不忠於本朝, 誅之, 及其諸子姪親屬百餘人.
群臣固請勒宜卽尊號, 勒乃僭卽皇帝位, 大赦境內, 改元曰建平, 自襄國都臨漳.⌡ 追尊其高祖曰順皇, 曾祖曰威皇, 祖曰宣皇, 父曰世宗元皇帝, 妣曰元昭皇太后, 文武封進各有差. 立其妻劉氏爲皇后, 又定昭儀、夫人位視上公, 貴嬪、貴人視列侯, 員各一人; 三英、九華視伯, 淑媛、淑儀視子, 容華、美人視男, 務簡賢淑, 不限員數.
석륵이 祖約이 본 왕실에 충성스럽지 않았기에 그와 그의 여러 아들과 조카와 친속 등 백여 명을 죽였다.
여러 신하들이 석륵이 마땅히 尊號에 즉위해야 한다고 청하니 석륵이 이에 참칭하여 황제에 즉위하여, 나라 안에 사면령을 내렸으며, 건평이라 연호를 바꾸고 襄國에서 臨漳으로 도읍을 옮겼다. …
334-49 태조, 무제(太祖, 武帝: 石虎)
․石虎가 弘을 폐하고 趙天王을 칭함(晉書卷一百六 載記第六 石季龍上 2762-3)
咸康元年, 季龍廢勒子弘, 群臣已下勸其稱尊號. 季龍下書曰 :
咸康 원년에 石虎가 石勒의 아들인 石弘을 폐하니, 여러 신하들이 그에게 존호를 칭할 것을 권하였다. 이에 석호는 下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王室多難, 海陽自棄, 四海業重, 故俛從推逼.
왕실이 다난하여 海陽王(石弘)이 스스로 내버렸으나, 천하의 업이 위중하기에 억지로 추대하는 것을 힘써 따르고자 한다.
朕聞道合乾坤者稱皇, 德協人神者稱帝,
내가 듣기에 도가 천지와 합치하는 자를 皇이라 칭하고, 덕이 人神과 화합하는 자를 帝라 칭한다고 하였다.
皇帝之號非所敢聞, 且可稱居攝趙天王, 以副天人之望.」
황제의 호칭은 감히 들을 바가 아니므로, 居攝趙天王을 칭하여, 하늘과 백성의 바램에 부합하고자 한다.」
於是赦其境內, 改年曰建武.
이에 나라 안에 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建武라 하였다.
349 세(世)
․石世가 왕위를 이음(晉書卷一百七 載記第七 遵 2787)
於是世卽僞位, 尊劉氏爲皇太后, 臨朝, 進張豺爲丞相. 豺請石遵、石鑒爲左右丞, 以慰其心, 劉氏從之. 豺與張擧謀誅李農, 而擧與農素善, 以豺謀告之. 農懼, 率騎百餘奔廣宗, 率乞活數萬家保于上白. 劉氏使張擧等統宿衛精卒圍之. 豺以張離爲鎭軍大將軍、監中外諸軍事、司隷校尉, 爲己之副. 鄴中群盜大起, 迭相劫掠.
349 준(石遵)
․石遵이 왕위를 찬탈함(晉書卷一百七 載記第七 遵 2787-8)
石遵聞季龍之死, 屯于河內. 姚弋仲、苻洪、石閔、劉寧及武衛王鸞、寧西王午、石榮、王鐵、立義將軍段勤等既平秦洛, 班師而歸, 遇遵于李城, 說遵曰 : 「殿下長而且賢, 先帝亦有意于殿下矣. 但以末年惛惑, 爲張豺所誤. 今上白相持未下, 京師宿衛空虛, 若聲張豺之罪, 鼓行而討之, 孰不倒戈開門而迎殿下者邪! 」 遵從之. 洛州刺史劉國等亦率洛陽之衆至于李城. 遵檄至鄴, 張豺大懼, 馳召上白之軍. 遵次于蕩陰, 戎卒九萬, 石閔爲前鋒. 豺將出距之, 耆舊羯士皆曰 : 「天子兒來奔喪, 吾當出迎之, 不能爲張豺城戍也.」 踰城而出, 豺斬之不能止. 張離率龍騰二千斬關迎遵. 劉氏懼, 引張豺入, 對之悲哭曰 : 「先帝梓宮未殯, 而禍難繁興. 今皇嗣沖幼, 託之于將軍, 將軍何以匡濟邪?加遵重官, 可以弭不?」 豺惶怖失守, 無復籌計, 但言唯唯. 劉氏令以遵爲丞相、領大司馬、大都督中外諸軍、錄尙書事, 加黃鉞、九錫, 增封十郡, 委以阿衡之任. 遵至安陽亭, 張豺懼而出迎, 遵命執之. 於是貫甲曜兵, 入自鳳陽門, 升于太武前殿, 擗踴盡哀, 退如東閤. 斬張豺于平樂市, 夷其三族.
仮劉氏令曰 :
劉氏를 사칭하여 令을 내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嗣子幼沖, 先帝私恩所授, 皇業75)至重, 非所克堪. 其以遵嗣位.」
제위를 이은 아들이 나이가 어려, 先帝의 사사로운 은혜를 받았으나, 皇業이 지극히 엄중하여, 능히 견뎌낼 수 없으니 遵으로써 황위를 잇게 하고자 한다.
遵僞讓至于再三, 群臣敦勸, 乃受之, 僭即尊位于太武前殿, 大赦殊死已下, 罷上白圍. 封世爲譙王, 邑萬戶, 待以不臣之禮, 廢劉氏爲太妃, 尋皆殺之. 世凡立三十三日.
전연(前燕:慕容․鮮卑)★337-48 태조, 문명제(太祖, 文明帝: 慕容皝)
․慕容皝이 稱王함
晉書卷一百九 載記第九 慕容皝 2817-8
⌠封弈等以皝任重位輕, 宜稱燕王, 皝於是以咸康三年僭即王位, 赦其境內.⌡ 以封弈爲國相, 韓壽爲司馬, 裴開、陽騖、王宇、李洪、杜群、宋該、劉瞻、石琮、皇甫真、陽協、宋晃、平熙、張泓等並爲列卿將帥. 起文昌殿, 乘金根車, 駕六馬, 出入稱警蹕. 以其妻段氏爲王后, 世子雋爲太子, 皆如魏武、晉文輔政故事.
封弈 등이 皝이 맡은 일은 중한데, 지위는 낮기에 마땅히 燕王을 칭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자, 皝은 이에 咸康三年에 참람되게 왕위에 즉위하고 나라 안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1) 천지에 지내는 제사
『康熙字典』 : 冬至祀天于南郊, 夏至祀地于北郊, 故謂祀天地爲郊.
2) 뛰어난 무용. 영명하고 위풍당당함. 神明과 威武.
『易․繫辭上』: 古之聰明叡知, 神武而不殺者夫.
『漢書․刑法志』: 漢興, 高祖躬神武之材, 行寬仁之厚, 總擥英雄, 以誅秦項.
3)『後漢書․禮儀』 注: 令月吉日,以宋貴人爲皇后,應期正位,生兆庶莫不式舞.
『晉書․律曆』 : 及夏殷承運,周氏應期,正朔旣殊,創法斯異.
4)『晉書․中宗元帝本紀』: 卽皇帝位, 詔曰 "昔我高祖宣皇帝誕應期運,廓開皇基."
5)『史記․秦始皇本紀』: 丞相李斯曰 "今陛下創大業,建萬世之功,固非愚儒所知."
『後漢書․顯宗孝明帝紀』: 詔曰 "朕以無德,奉承大業,而下貽人怨,上動三光."
6) 공명정대한 덕행. 더럽히지 아니한 천부자연의 본성, 곧 인의예지의 덕. 자기의 덕성을 밝힘. 完美한 德性.
『書․君陳』: 黍稷非馨, 明德惟馨.
『禮․大學』: 大學之道, 在明明德.
7) 나라가 잘 다스려져 태평함. 太平.
漢應劭『風俗通二正失孝文帝』: 治天下, 致升平.
『漢書․梅福傳』: 使孝武皇帝聽用其計, 升平可致.
『三國志․吳書三三嗣主․孫休』: 詔曰 “以○僚之忠賢,若盡心於時,雖太古盛化,未可卒致,漢文升平,庶幾可及.”
8)『史記․太史公自序』: 漢興五世,隆在建元,外攘夷狄,內脩法度,封禪,改正朔,易服色.
『漢書․食貨志』: 至於始皇,遂幷天下,內興功作,外攘夷狄.
9) 구하고 추천하다
『晉書․羊祜傳』: 夫擧賢報國,台輔之遠任也 ; 搜揚側陋,亦台輔之宿心也
10) 뛰어난 사람. 賢才. 덕성과 명망이 높은 노인.
11)『晉書․樂上․四廂樂歌』正旦大會行禮歌 中: 穆穆天子,光臨萬國.多士盈朝,莫匪俊德.
12) 임금의 시조와 중흥의 조, 대대의 임금, 시조 및 先世에서 공덕이 있었던 사람에 대한 존칭 『禮․祭法』: 有虞氏禘黃帝而郊嚳,祖顓頊而宗堯. 疏 : 祖, 始也, 言謂道德之初始, 故云祖也. 宗, 尊也, 以有德可尊, 故云宗.
13) 점복으로써 亨國의 연수를 예측하는 것
14) 세대의 존속 운수를 점침, 점복을 이용하여 傳國의 世數를 예측하는 것.
『左傳․宣三年』: 成王定鼎于郟鄏. 卜世三十. 卜年七百.
『史記․秦始皇本紀』 注 : 正義周初卜世三十,卜年七百,以五序得其道,故王至三十七,歲至八百六十七.
15) 편벽하다. 치우치다. 간사하다. 방종하다.
16) 복록, 천자의 지위
『後漢書․班彪列傳』: 哀、平短祚,國嗣三絶. 注 : 哀帝在位六年,平帝在位五年,故曰短祚.
17) 큰 물이 하늘에 까지 창일함.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업신여김. 죄악 등이 큼.
18)『漢書․律曆志』: 惟太甲元年十有二月乙丑朔,伊尹祀于先王,誕資有牧方明.
『魏書․恭宗景穆帝』: 冊曰 “嗚呼! 惟爾誕資明叡, 岐嶷夙成.”
19) 지덕을 겸비한 武勇. (천자가)현명하고 사리에 밝으며, 영민하고 용맹스럽다.
『書․伊訓』: 惟我商王. 布昭聖武
20) 大業의 기초.
『三國志․蜀書․後主禪』注 : 諸葛亮集載禪三月下詔曰:“…朕以幼沖,繼統鴻基,未習保傅之訓,而嬰祖宗之重.”
21) 덕이 하늘에 견줄만 함. 『書․君奭』: 故殷禮陟配天.多歷年所
하늘에 제사지낼 때 그 조상을 같이 제사지냄. 『詩․周頌思文』: 思文.后稷配天也.
22) 오래 된 물건, 선대의 전장제도.
『左傳․哀元年』: “復禹之績. 祀夏配天. 不失舊物.” 注 物, 事也.
23) 日․月․星의 세 빛
24) 제위 승통의 표시로 하는 기물. 옥새 같은 것. 제위. 신령한 기물.
『晉書․訥子疇傳』: 上疏曰 “惠皇不懷,委政內任,遂使神器幽淪,三光翳曜.”
25)『晉書․載記․赫連勃勃』: 勃勃謂買德曰 “朕大禹之後,世居幽朔.祖宗重暉,常與漢魏爲敵國.”
26) 천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大本. 치세의 법칙
『三國志․魏書․文帝丕』 注 : 冊詔魏王禪代天下曰 “漢道陵遲,爲日已久,安、順已降,世失其序,沖、質短祚,三世無嗣,皇綱肇虧, 帝典頹沮.”
27) 天步=天運
『詩․小雅․白華』: 英英白雲.露彼菅茅.天步艱難.之子不猶.
28)『漢書․息夫躬傳』: 下詔曰 "南陽太守方陽侯寵,素亡廉聲,有酷惡之資,毒流百姓."
『三國志․魏書』注 : 董卓自竊權柄,至于隕斃,計其日月,未盈三周,而禍崇山岳,毒流四海.
29) 흉악하여 도리에 거슬림
30) 일을 버려두고 돌보지 않음
『三國志․吳書․諸葛恪』: 與弟公安督融書曰 “今月十六日乙未,大行皇帝委棄萬國,○下大小,莫不傷悼.”
31) 방랑하다.
『後漢書․袁紹列傳』: 將軍累葉台輔,世濟忠義.今朝廷播越,宗廟殘毁,觀諸州郡,雖外託義兵,內實相圖,未有憂存社稷卹人之意.
32) 否: 비괘비 64괘의 하나. 음양이 고르지 못하여 일이 잘 되지 않는 象
泰: 태괘태 64괘의 하나. 음양이 조화되어 사물이 通利하는 象.
否泰: 막힘과 통함. 불운과 행운.
『周易․否』: 象曰.否終則傾.何可長也.
33) 수레뒤턱나무(수레의 뒤에 있는 가로나무). 수레. 회전하다.
34) 『晉書․王湛傳』 : 永嘉不競,暫都江左.方當蕩平區宇,旋軫舊京.
35) 窘辱: 困辱
36) 망하여 없어짐.
『後漢書․臧洪傳』 : “漢室不幸,皇綱失統,賊臣董卓,乘釁縱害,禍加至尊,毒流百姓.大懼淪喪社稷,翦覆四海.”
37) 희생을 올리는 제사를 지냄.
38) 『春秋左傳․僖公二十八年 』 : 今天誘其衷.使皆降心以相從也.
39) 『三國志․魏書․三少帝』 詔曰 : “朕以眇身,繼承鴻業,煢煢在疚,靡所控告.”
40) 나. 王侯의 謙稱.
『禮記․玉藻』 : 凡自稱, 小國之君曰孤.
41) 돌아보다. 방문하다. 먼저 있던 데로 돌아가다. 도리어. 반대로. 다만. 생각건대. 인도하다.
42) 몸이 약하고 재주가 어두움. 나약하고 우매함.
43)『晉書․肅宗明帝紹』 : 詔曰 “仰惟祖宗洪基,不能克終堂構,大恥未雪,百姓塗炭,所以有慨耳.”
44) 『晉書․張重華傳』 : “今王室如燬,百姓倒懸,正是殿下銜膽茹辛厲心之日.”
45) 喩刻苦自勵
46) 삼조(한고조, 광무제, 소열제), 오종(한문제, 한무제, 한선제, 한명제, 한장제)
47) 수행하여 일을 집행하는 사람. 대부분 官府의 衙役이나 官, 紳家의 심부름꾼.
48) 魯隱公: 춘추시기 노나라의 임금. 혜공의 長庶子. 혜공이 죽고 태자가 너무 어려 섭정을 11년을 하다가 태자를 위하여 시해를 당함.
49) 『尚書․周書․洛誥』: 周公拜手稽首曰. 朕復子明辟. 王如弗敢及天基命定命.
『後漢書․․孝桓帝紀』 : 注 尚書曰:「周公曰『朕復子明辟』」復,還也.子謂成王也.辟,君也.謂周公攝政已久,故復還明君之政於成王
50) 明辟=明君
51) 資治通鑑 晉紀9 권87
群臣请聪即帝位;聪以北海王乂,單后之子也,以位让之。乂涕泣固请,聪久而许之,曰:“乂及群公正以祸难尚殷,贪孤年长故耳。此家国之事,孤何敢辞!俟乂年长,当以大业归之。”遂即位。大赦,改元光兴。尊单氏曰皇太后,其母张氏曰帝太后。以义为皇太弟、领大单于、大司徒。立其妻呼延氏为皇后。呼延氏,渊后之从父妹也。封其子粲为河内王,易为河间王,翼为彭城王,悝为高平王;仍以粲为抚军大将军、都督中外诸军事。以石勒为并州刺史,封汲郡公.
52) 以聞: 신하가 천자에게 아룀. 상주함
53) 繕: 깁다. 손보아 고치다. 다스리다.
54) 곰과 범은 旗이고, 鳥章은 幟라 한다.
『漢書․高帝紀』: 漢承堯運,德祚已盛,斷蛇著符,旗幟上赤,協于火德,自然之應,得天統矣.
55)『書堯典』 : 否德, 忝帝位. 이후 겸양하는 뜻으로 쓰임.
56) 존숭하고 사랑받음
『三國志․․魏書․少帝․齊王芳』 : 丁丑詔曰 “昔周成建保傅之官,近漢顯宗崇寵鄧禹,所以優隆雋乂,必有尊也.”
57)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58) 『晉書․萬弟石傳』 : 石在職務存文刻,既無他才望,直以宰相弟兼有大勳,遂居清顯,而聚斂無饜,取譏當世.
『晉書․載記․慕容皝』 : 谷永、張禹依違不對,故容身苟免,取譏於世.
59) 一匡: 어지러운 천하를 바로잡아 다스림
『論語․憲問』 : 管仲相桓公, 覇諸侯, 一匡天下.
60) 도의가 융성하다.
61)『穀梁傳』 : 誥誓不及五帝,盟詛不及三王,交質不及二伯. 注 二伯謂齊桓公晉文公也
62) 어지러운 모양
63) 천자가 백성에게 酒食을 크게 내림
64) 『晉書․齊王傳』 : “公蒙犯矢石,躬貫甲冑,攻圍陷陣,得濟今日.”
65) 고생을 고루고루 맛봄.
66) 葛陂: 지명. 지금의 河南新蔡縣北쪽. 서진 말, 석륵이 葛陂에 성채를 쌓고, 建鄴을 공격함.
67) 功位: 공적의 높고 낮음에 따라 정해지는 朝列의 位次
『漢書․高后紀』 : 詔曰 “今欲差次列侯功以定朝位,臧于高廟,世世勿絕,嗣子各襲其功位.”
68) 慰答: 위로하여 보답함.
69) 子: 첫째지지자: 십이지의 제일위, 방위로는 정북, 달로는 음력 동짓달.
社: 하지에 토지의 주신을 제사지냄. 입춘 및 입추 후의 제5의 戊日. 또 그 날 지내는 제사.
丑: 둘째지지. 십이지 중의 제이위. 방위로는 북동. 달로는 음력 12월.
臘: 납일(동지후 3일의 戌日)에 행하는 제사. 섣달 랍(음력 12월)
70) 六曹의 尙書, 令과 僕射
71) 丞郞: 시종의 官. 唐대의 左右 丞과 六曹 侍郞을 일컫는 말.
72) 동쪽의 행랑채. 고대에 활쏘기를 익히던 곳. 晉시기 궁전의 正殿
73) 詳平: 주도면밀하고 공평하다.
74) 平決: 평가하여 결단을 내리다.
75) 천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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