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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여행/체코-헝가리 2019. 2. 15. 11:53

    노선을 엄청 고민하다가 항공비가 계속 오르는 것을 보고 덥썩 표를 사버렸다.


    5월 말 6월 초, 8박 10일의 일정으로 

    인천-바르샤바(레이오버 1박)-프라하

    부다페스트-인천으로 발권하였다.


    바르샤바에서의 1박, 부다페스트에서의 2박을 제외하고는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까지 어떻게 이동할지, 이동하면서 다른 도시를 들를지, 프라하 근교 도시로의 방문에서 숙박을 할지 등은 하나도 정하지 않았다. 


    프라하에서의 일정을 정하는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프라하 봄 국제 음악 축제(74th Prague International Music Festival)'의 공연 일정이었다. 스메타나의 생일인 5월 12일부터 시작해서 3주정도 진행되는데 내가 프라하에 머무르는 시기가 이 축제 기간과 맞물린다.

    이 음악제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으로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한 이후 체코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였던 쿠벨릭이 주도하여 만들었다. 외국인 이름을 도통 외우지 못하는 내가 이름을 기억하는 외국인 지휘자가 세 명인데 라파엘 쿠벨릭이 그 중 하나이다. 그는 1946년 이 축제의 서막을 올리는 개막 공연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나라가 공산화되자 그는 자유를 찾아 길고 긴 망명을 떠났다. 체코에서 벨벳혁명이 일어나면서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자 약 40년만에 다시 고국 땅을 밟은 쿠벨릭은 이 음악 축제에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Ma Vlast)> 전곡을 지휘하였다. 

    세상에 좋고 좋은 노래는 많지만 스메타나와 쿠벨릭의 조합이 빚어낸 La Vltava 만큼 나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음악은 없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음악과 이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울컥 눈물이 치밀어 오른다. 아마도 자유를 빼았겼던 산하를 유장하게 흐르던 블타바를 그린 가락에 곡절 많은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이 투영되어서가 아닐까. 쿠벨릭을 떠올릴 때면 자꾸 우리 독립지사들이 떠오른다. 쿠벨릭은 모국의 품에 돌아와 모국의 흙으로 돌아갔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그러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에 관한 글은 https://leonpero.tistory.com/541 에서도 떠들었다.

    원래의 목표라면 개막식 공연에서 스메타나 홀에서 연주되는 스메타나의 블타바를 듣는 것이지만(만약 이뤄졌다면 구석에서 통곡하는 한국인을 보게 되었을지도), 아쉽게도 이번에는 일정이 맞지 않는다. 대신 체코 필하모닉이 스메타나 홀에서 연주하는 공연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구입한 표가 바로 아래의 공연.

    세실 맥로린 살반트(Cécile McLorin Salvant)는 처음 이 프로그램지를 봤을 때만해도 그래미 상을 두 번 수상했다고 나왔는데 올해에도 수상하면서 이 프로그램에도 triple Grammy Winner로 발빠르게 수정되었다.

    일단 누구인지 모른다. 재즈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보컬 쪽에는 그닥 흥미가 없다. 친구가 영상을 찾아보더니 엄청 상콤하댄다. 유튭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는 순간 닭살이 쫙 돋았다. 이렇게 예쁜 목소리의 가수가 있다니. 

    남아있는 자리가 넘 구려서 취켓팅을 노려볼까 했지만, 트리플 위너가 되자 마음이 급해져서 구석진 표를 낚아챘다. 

    그리하여 프라하에 도착한 첫 날(5월 31일)과 둘째 날(6월 1일)의 일정은 정해졌다.


    드레스덴과 체스키크롬노프를 어찌 할지 고민이다. 

    동행인은 언제나 그렇듯 베스트 프렌드 포에버.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