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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코) 프라하 - 프라하 성, 성 비투스 성당, 하벨시장, DOX, 까렐교
    여행/체코-헝가리 2019. 9. 3. 17:01

     

    길을 따라 수도원에서 프라하성 정문까지 도착.

    이 길은 산책로로는 꽤 괜찮아서 마음 같아서는 완보하며 친구 사진을 더 많이 찍어주고 싶었지만 본의 아니게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시간을 맞춰서 봐야 할 것이 있었다.

    12시에 근위대 교대식이 있다. 시간이 안 맞으면 안 봐도 그만이지만 시간이 맞으니 괜히 욕심이 난다. 게다가 매시간 있는 교대식 중 정오의 교대식이 가장 성대하다고 한다.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이 몰려있다. 마땅히 어디 올라가서 볼 곳도 없다. 정오의 교대식은 무려 20분간이나 진행된다.

    이 행사는 다음에 해당하는 자에게 추천한다.

    • 정오의 프라하 땡볕 맛을 보고 싶은 자
    • 까치발 들기에 큰 흥미를 느끼는 자
    • 키가 서장훈정도 되는 자
    • 세계 각국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들어 올린 팔 아래에서 나는 향에 취하고 싶은 자
    • 제복 입은 자에게 사족을 못 쓰는 자

    나는 그 무엇에도 해당되지 않건만 떠나야 할 때를 놓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다음에는 재미있는 게 있을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조금만 더 기다리다보면...!

     

    하필 교대식이 끝나서 사람이 일순간 몰리는 시간에 입장(검색대 통과해야 함). 

    들어와 보니 프라하성 입장권을 구입하려는 사람으로 인산인해.

    약 30분을 땡볕에서 암내 맡으며 까치발 하느라 엄청 피곤한 상태인지라 나는 친구에게 프라하성 표를 사지 말고 수박 겉핥기만 하고 지나가자고 얘기했다. 게다가 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의 취향도 한몫했다. 친구는 아쉬워했지만 일단 오케이.

     

    비투스 성당 겉핥기 후 성에서 걸어내려왔다. 친구는 아쉽다며 다시 와서 보자고 했고, 이틀 후 다시 정오 즈음 프라하성의 근위대 초소부터 시작해서 그 길을 그대로 따라 걷는 데자뷔 돋는 상황이 발생한다. 물론 이번에는 표를 구입하였다.

    걸어 내려오는 길은 돌이 닳아 미끄럽긴 하지만 나름 프라하 전경을 볼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우리는 시차 적응도 안 된 데다가 아침부터 맥주도 마셨고 땡볕, 까치발, 암내의 쓰리콤보(이 얘긴 이제 그만해야겠다)로 그로기 상태이다. 너나할 것 없이 숙소에 돌아가서 쉬는(=자는) 것으로 합의. 

    잠깐이지만 너무나도 꿀잠을 잔 우리는 다시 구시가지로 항하였다. 숙소가 관광지에서 꽤 거리가 있긴 했지만 워낙 교통이 편해서인지 이리도 자주 드나들었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길을 걷다 보니 근처에 하벨 시장이 있다. 

    이곳이 800년된 시장이래 하며 잠시 두리번두리번. 주말에는 기념품 파는 시장으로 변한다더니 관광객용 시장이라 그런지 딱히 마음을 끄는 것이 없다. 

    길을 가다보니 구글 지도가 옆에 괜찮은 성당이 있다고 알려준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바로 성 아에기디우스 성당(Kostel svatého Jiljí)이다. 세렌디피티를 꿈꾸며 들어갔지만 이런 건 꿈꾼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큰 감동을 받지는 못했지만 제대 위 천장 프레스코화에 있는 지붕창이 특이했다.

    성당을 나와 조금 걷다보니 구글 지도에는 분명 '매달린 지그문트 프로이트 상(Socha zavěšeného Sigmunda Freuda)'이 있다고 쓰여 있는데 찾을 수가 없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뙇!

    공중에 프로이트가 매달려있다. 프로이트가 말한 죽음충동을 형상화한 것일까. 거꾸로 매달린 바츨라프 말 동상으로도 유명한 다비드 체르니의 작품이다. 프라하 관광을 즐겁게 만드는 조형물이다. 익살스러움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아점으로 수도원에서 맥주를 마시며 식사를 하고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여태껏 공복 상태이다. 친구가 디저트인 메도브닉을 먹고 싶다며 카페 에벨(Cafe Ebel)에 가고 싶단다. 근처에 가니 가고 싶었던 우 즐라테호 티그라(U zlatého tygra)의 황금호랑이 표지판이 있다. 저기에서 맥주가 마시고 싶다는 얘기를 하다가 결국 먹게 된 것은 맞은편 젤라또 집 크림 드 라 크림(Crème de la Crème). 

    이렇게 우유부단의 끝을 달리게 된 연유는 저녁에 예약해둔 공연 때문이다.

    저녁에는 DOX+라는 현대미술관에서 하는 프라하 국제음악축제 공연이 있어 한국에서부터 예약하였다. 어떤 공연인고 하니 바로 세실 맥로린 살번트(Cecile McLorin Salvant)라는 재즈가수의 무대이다. 이 가수로 말하자면 그래미에서 베스트 재즈 보컬 앨범상을 2016, 2018, 2019년에 걸쳐 탄 떠오르는, 아니 이미 뜬 재즈계의 거성이다. 

    젤라또를 먹고 시계를 보니 공연장까지 가는 데에 시간이 촉박해 보인다. 그때부터 우리는 약 1km 정도 떨어진 버스정류장으로 향하였다. 이때의 파워워킹은 전례 없는 속도와 강도였다. 오로지 버스 시간에 맞춰 가겠다는 일념으로 우리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코스를 돌파하였다. 내 친구는 꽤 불편한 신발을 신고 있었음에도 싫은 소리 한마디 없이 가자는 대로 묵묵히 길을 걷는다. 난 가끔 친구의 성실성에 감탄하곤 한다.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무언가 함께 하기로 하면 군소리 없이 해낸다. 쉽게 말하면 안 성실해 보이는 얼굴로 무지 성실하다는 것. 반면 나는 반드시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될 생김새를 한 채 불성실하다. 큰 일이다.

    무사히 버스에 올랐는데 아뿔싸 또다시 공연장에 너무 일찍 도착했다. 프라하의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를 매양 우습게 만든다. 우리의 빠워워킹 돌리도.

    DOX+는 보통의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프라하 외곽지역에 위치해있다. 주변도 주택지구인데 뜬금없이 현대미술관이 자리 잡았다. 나는 현대미술관 안에 있는 공연장이라고 생각해서 조금 일찍 가면 공연을 기다리며 작품도 좀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가끔 공연 관람객에게만 열려있는 작품 전시실을 구경하는 행운을 누린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살짝 기대했었다. 그러나 가서 보니 공연장과 전시실은 별개의 건물이었고 미술관은 이미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이곳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 두 건물의 연결 부위를 찾겠다며 건물을 샅샅이 뒤졌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교도소 복도에서 찍은 듯한 사진만 남아있다. 친구는 그 와중에 화장실에서 티켓과 파우치를 잃어버렸는데 다행히 누군가가 물품보관소에 맡겨두었다. 

    건물 위로 나무비행선 걸리버가 걸려있다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내 앞에는 농구선수인 듯한 모녀가 앉았다. 공연 내내 목을 이리저리 빼야 했지만 무대 자체는 참 좋았다. 세실 맥로린 살번트는 노래하면서 중간중간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녀가 미국인이라 다행이었다. 가수나 우리나 모두 외국인이라 오히려 소외감을 덜 느꼈다. 예전에 오스트리아에서 발레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갑자기 무대에 독일어를 쓰고 관객들은 좋다고 웃고 나는 홀로 군중 속의 지독한 고독을 느낀 적이 있어서 말이다. 그런데 체코 사람들은 다 영어를 잘하는 건가. 통역 한번 없이 실시간으로 웃고 호응하며 잘 진행되었다.

    사실 살반트의 노래를 제대로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미시적인 세계로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노래이고 가사이고 다 필요 없이 그녀의 목소리와 테크닉이 다 했다. 일단 음색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닌데 그것을 다루는 솜씨가 무림 고수 같다. 1시간 30분의 공연 내내 그녀의 목소리와 재즈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취했다. 목이 뻐근한 것 빼고는 현실세계 같지가 않았다.

    공연은 9시 30분에 끝났다. 무언가 잔뜩 충전된 기분이 든 우리는 문득 맥주를 마실까 하며 다시 구시가지로 향하였다(1일 교통권을 뽕을 뽑는다).

    우리의 하루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정작 도착해서는 까를교를 못 봤네 하며 까를교를 한 번 건너봤다. 까를교는 밤 시간에도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관광객과 날벌레의 습격에 불현듯 피곤함이 몰려온다. 유명한 얀 네포무츠키의 동상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게 보였다. 이 상의 금색 부분을 만지면 프라하에 다시 돌아온다는데 나는 손때가 잔뜩 탄 물건을 만지는 데에 흥미가 없다. 친구도 프라하에 다시 안 와도 되겠다 하여 패스. 둘다 냉정하기가 엘사가 만든 얼음기둥이다.

    다리 건너기 전과 건넌 후의 마음이 바뀐다고 하던가. 일단 다리를 건너고 나니 맥주고 뭐고 집으로 가는 것으로 합의.

    내일은 아침 일찍 드레스덴에 가야 한다.

    그런데 플릭스 버스 앱에서 내일 아침에 탈 버스가 연착된다는 메시지가 온다.

    원래 아침 6시 40분 플로렌스 역 출발 버스인데 110분 연착이란다. 8시 30분경 버스표가 비싸서 이른 시간 버스표를 끊었는데 오히려 더 잘 됐다며 친구와 쾌재를 불렀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