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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ulla dies sine linea_天地不仁
    What am I doing? 2022. 2. 10. 12:58

     

    <산하령> 27편에서 엽백의는 자신들을 함께 죽이라는 주자서와 온객행을 향해 용배를 허공에 가른 뒤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天地不仁 以万物为刍狗。温客行, 你若肯留在四季山庄改过向善也罢。若是让我在江湖再碰见你, 定取你性命! “

    "천하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엮은 개처럼 대한다. 온객행, 네가 만약 사계산장에 머물며 개과천선하겠다면 그리 해라. 그러나 만약 강호에서 너와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반드시 네 목숨을 앗아가겠다."

    저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의 출처는 노자의 <도덕경>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언설이다. 세상만사 돌아가는 일에 이치와 의미를 부여하려는 자들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일견 차갑게 얘기해주기 때문이다. 천지에서 만물이 나고 자라지만 그것은 의도가 있어서도, 긍휼한 마음이 있어서도, 보상을 바라서도 아니고, 그저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애달퍼하며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기고, 억지로라도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순간 종교가 생긴다.

    노자는 이렇게 간단히 말하였지만, 이 얘기를 엄청 풀어서 쓴 사람이 있으니 바로 하고픈 말이 너무나도 많은 리처드 도킨스이다. 

    자연은 잔인하기보다는 단지 무자비하고 냉담할 뿐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내용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선의도 악의도 없고, 잔인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으며, 단지 냉담할 뿐인 어떤 사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사람의 뇌 속에는 목적이 가득 들어 있다. 어떤 사물을 보면서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또는 그것을 만든 동기나 이면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목적에 대한 강박관념이 병적인 상태로 발전하면 그것을 편집증이라 부른다. 즉 실제로는 우연한 불운일 뿐인데도 그 속에 어떤 악의가 있지 않나 하고 의심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것은 목적이 있다는 생각에 깊이 사로잡힌 존재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 <에덴 밖의 강>

    도킨스는 그나마 이 내용을 <만들어진 신>에서 근 600페이지에 걸쳐 길게 쓰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님은 엽백의가 어떤 맥락에서 저 말을 인용했는지 이해를 잘 못한다. 어찌 되었건 괜찮다. 천지는 불인이지만 엽백의는 인의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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