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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사
    What am I doing? 2022. 3. 29. 11:38

     

    《산하령》을 보고 초사를 다시금 찾아 읽게 되었다.


    처음 온객행이 굴원의 <어부사>의 구절(沧浪之水清兮 可以濯吾缨 沧浪之水浊兮 可以濯吾足-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수 있고, 창랑의 물이 더러우면 내 발을 씻을 수 있네)을 읊을 때는 그저 '굴원이네, 중국인들 굴원 참 좋아해' 이러면서 넘어갔다. 그러다가 후에 복습하면서 주자서가 온객행을 향해 기꺼이 벼랑으로 몸을 던질 때 나오는 구절(何故至于斯-어찌하여 이렇게까지 되었는가/드라마 대사에서는 何至于斯로 나옴)이 굴원의 어부사 구절인 것을 알고 그만 전율이 돋았다. 

    날다람쥐 같아 보이면 그것은 오해요.

     

    나는 중문학 수업은 거의 고전만 들었는데(굉장히 편식함), 그때 한 선생님이 초사 전공자였다. 그 분이 하도 초사 타령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접했는데, 정서가 좀 아니 많이 안 맞았다. 굴원이 가진 특유의 체념적인 회한의 정서가 영 마뜩지 않았다. 나는 약간 습습한 화중 지방보다는 까끌까끌하게 마른 화북에 더 가까웠다. 그렇다고 시경을 딱히 즐긴 것도 아니지만서도(캬캬). 굴원의 사는 질척거림이 느껴진다. 쉽게 버리고 떠나지 못하고 남고 싶은 이유를 수백 가지 들지만 떠나야 함을 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자신을 엄청 객관화하고 자부심이 느껴져서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게다가 초사는 입에서 도는 운율이나 성조의 재미도 덜하다.

    그러다가 이번에 <산하령>을 보고 다시 초사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 뿌리깊은 허탈함의 정서가 스며들면서 마음 한 켠이 저릿했다. 부러지지 않는 이상주의적 굴원의 정서를 이해하기에 적절한 나이가 된 것일 수도 있겠다. 낭독해주는 것이 듣고 싶어서 유튜브에서 초사 몇 개를 들었는데, 어부사를 듣다가 괜히 울컥해지기도 했다. 굴원은, 주자서는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그런데 다른 초사들 중에는 아직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이 죽일 놈의 취향.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