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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ulla dies sine linea - 손에 못이 박이다
    What am I doing? 2022. 5. 10. 11:46


    독서모임에서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초반 두 챕터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책의 한국판 서문은 중국 정부의 과도한 검열을 피하기 위해 천안문 6.4 항쟁을 에둘러서 5월 35일로 표현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특정 사안에 대해 소설이라는 허구적 양식을 빌리면 출판 가능하지만, 논픽션이면 금서로 지정되는 작금의 상황을 사뭇 부드럽게 비판한다. 

    마침 모임 친구가 전자의 예로 출판되었던 <형제>를 읽었다며 소개해주었다. 문화대혁명의 격동 속에서 살아가는 형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 와중에 선량한 선생이 단지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살해되기까지의 군종심리와 그 사이에 요동치는 개인의 자각을 인상 깊게 묘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줄거리와는 상관없이 문득 내 귀를 끄는 말이 있었다. 지식인과 노동자를 식별하는 방법은 손톱 아래에 흙이 껴있느냐의 여부라는 것이다. 손톱 아래가 깨끗하다면 지식인이므로 이로써 단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순간 초딩 저학년 시절에 읽었던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10살도 안 된 어린이에게는 꽤 어려워서 나름 용을 쓰며 읽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내용이 기억난다. 왕이 된 바보 이반은 "손에 못이 박인 사람만 음식을 먹으라"라고 계속 강조했는데 어린 나이에 도대체 못이 박이는 게 뭔지 모른 채, 약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정도를 상상하며 기억을 봉인해놨었다. 그러다가 저 <형제> 이야기와 함께 퍼뜩 떠올랐다. 요즘 읽는 책 중 손으로 하는 노동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이 꽤 있는데, 똥손의 주인은 내게는 역시 좀 어렵다. 필기만으로도 못이 박인 친구들도 많았던 것 같은데.

    이 책이 다룬 문화대혁명이나 천안문 항쟁도 그렇고, 아울러 읽는 <철학 대 철학>의 동양철학 부분도 그렇고, 친구들은 오히려 동양의 것이 더 낯설다고 아우성이다. 그러고 보니 이 모임이 지속된 지가 어언 10년이 넘는데 동양 쪽 텍스트를 선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래 영어 원서 읽는 모임이기도 했고, 매번 텍스트를 선정했던 내가 동양을 전공한지라 교양 서적과 전문 서적의 간극이 있어 저도 모르게 비껴간 듯하다. 선진 철학이 나오면 성선설/성악설만 알겠다고 아우성이고, 불교가 나오면 어휘부터 어렵다고 성화이다. 그렇게 오전에는 불교에 대해 얘기하고 생각난 김에 저녁에는 봉은사에 산책을 다녀왔다. 마침 석탄일이기도 했고.

    포스팅에 이 사진 붙이려고 씽크빅.

    반가사유상


    몇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완전 돈 냄새 폭발. 

    가람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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