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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속의 철학자들> by 나가이 레이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25. 1. 7. 12:48

    독서 모임에서 다음에 읽을 책을 정하기는 항상 난제이다. 누군가가 <물속의 철학자들>를 수면 위로 올리며 괜찮겠어요? 하시길래 "물도 좋고, 철학자도 좋은데, 물속의 철학자라니 안 읽을 이유가 없네요"라고 응수했고, 그렇게 책이 정해졌다.

    그러나 처음 몇 장을 펴들고는 자기 계발이라는 물에 철학이라는 감미료를 탄 책이 아닐지 걱정했다. 이런 책들이 가진 특유의 혀를 맴도는 메케한 뒷맛에 여러 번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속의 철학자들>은 달랐다. 어느새인가 작가와 함께 물속에 들어가 수면에 굴절된 빛을 바라보는 철학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읽기 쉽기에 가볍다고 느꼈을 뿐 품은 속뜻은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하고, 때로는 끼쳐오는 울컥함을 느끼게 한다.

    흔히 철학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용어와 구조에 짓눌려 생활인으로서의 나를 대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렇게 높은 옹성 안에 들어간 철학의 벽을 깨는 것도 물론 즐거운 일이다. 주체와 타자라는 인식론 안에서 타자를 어떻게 수용할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그러나 이 책은 이를 넘어서는 실천철학으로서의 담대함을 가졌다. 거대한 언어로 쓰인 타자와의 마주침과 받아들이는 과정을 쉬운 글 속에 녹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를 사르트르의 '부름'이라는 행위에 빗대어 설명한다. 마치 버스에 탄 승객이 버스를 타러 뛰어오는 사람에게 손 내밀어 주고, 그 손을 잡아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손을 내민 자의 행위도, 그 손을 잡는 결정도, 모두 자유로운 행위자의 자유로운 결정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자유를 지니고 타인의 자유를 부르는 그 순간이 타인과의 직접적인 맞닥뜨림이고, 이 책이 매개로 하는 '철학 대화'의 기본원리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우리네 독서 모임도 '철학 대화'와 비슷한 모양을 갖추었다. 각각 책을 읽는 이유도 다양하고, 책을 읽고 해석하는 방법도 다르며, 시간을 내어서 모임에 참석하는 뜻도 다르리라. 각자 다른 삶의 배경, 경험, 지식을 가지고 하나의 책을 읽으며 생각을 나누어야 하는 이 상황 자체가 때로는 고역이 될 수도 있다. 내게는 너무나 자명한 이치가 다른 이에게는 윤리적 걸림돌로 작용하는 모습을 볼 때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고 결론 내리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할 때가 왕왕 있다. 어느 순간 나는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완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절망하지도 않고 당연시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싶다고, 나는 바란다. 완전히 통하지 않아도 된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하는 것, 함께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책은 "결국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고 결론 내리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타인과 부딪친다. 이는 내 의견이 옳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유를 가지고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부름'이라는 행위로 타자와 조우하는 용기 있는 행위를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독서 모임에서 생각을 나누면서, 물속에 깊이 잠긴 나와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흡수하고 뱉어내는 생각이 마치 물에 산소처럼 녹아 당신을 숨 쉬게 하고 나를 숨 쉬게 한다. 때로는 밝은 빛 찰랑이는 수면 위에서 내게 내밀어 준 다른 이의 손을 잡아보기도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어 보기도 한다. <물속의 철학자들>은 이렇게 일상에서 부르고기꺼이 응답하는’, 그래서 이해받고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 철학자 모두를 위한 책이다.

     

     

    >>>이 글은 어딘가에 제출하기 위해 쓴 글이다. 혹시나 훗날 찾게 될까봐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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